시집에서 읽은 시

강물에 띄운 편지/ 이학성

검지 정숙자 2020. 1. 12. 00:26

 

    강물에 띄운 편지

 

    이학성

 

 

  흐르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달무리가 곱게 피어났다고 첫줄을 쓴다.

  어디선가 요정들의 아름다운 군무가 그치지 않으리니

  이런 밤은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고 쓴다.

  저 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도무지 당신의 마음도 알 수 없다고 쓴다.

  이곳에 나와 앉은 지 백 년,

  저 강물은 백 년 전의 그것이 아니라고 쓴다.

  마음을 벨 듯하던 격렬한 상처는

  어느 때인가는 모두 다 아물어 잊히리라 쓴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잊히지 않으니

  몇날며칠 같은 꿈을 꾸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쓴다.

  알 수 없는 게 그것뿐이 아니지만

  어떤 하나의 물음이

  꼭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기에

  저물어 어두워가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강물에 띄운 편지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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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늙은 낙타의 일과』에서/ 2019. 11. 11. <시와반시> 펴냄

  * 이학성/ 경기 안양 출생, 1990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여우를 살리기 위해』『고요를 잃을 수 없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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