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의 노래
신원철
바람에 실려 구름을 타고
80, 90년대 이민에 휩쓸려 온 이들
사연은 제각각이다
자식 공부시키러?
돈 한 번 제대로 벌어보겠다고?
답답한 한국이 싫어?
자녀들은 신천지에서 날아올랐지만 본인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들 멀리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홀로 동양하숙 현관에 앉아 한인신문을 뒤적이는 이 노인
이것들이 내 돈 다 뺏어 잘 먹고 살면서
이럴 수 있어?
새끼들은 찾지도 않고
여편네는 지 친구들이랑 맨날 나돌아 다닌단 말야
가끔씩 울화통을 터뜨리는데
귀는 잘 안 들리지만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노인
하얗게 식어가는 불씨는 되살리기 힘들어도
과거는 뜨겁다
내가 옛날 대구계성 축구부였을 적엔 말이야……
-전문-
해설> 한 문장: 먼 이국땅까지 와서 고생했지만 노인의 그 힘든 시간을 보상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도 사회도 그가 떠나온 한국 땅도 아무도 그를 기억해주거나 대접해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기댈 것은 오직 과거뿐이다. 그는 그것을 뜨거웠던 시절 "내가 옛날 대구계성 축구부였을 적"이라는 말로 과시한다. 그런데 이 자기만족의 퇴행적인 옛날 자랑 속에는 그가 지금 느꼈을 분노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시인은 바로 이것에 대한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또한 시인은 나성 즉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만이 아니라 이땅에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 함몰되어 현재의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보수화되어가는 이 땅의 일부 노인들의 부정적 측면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를 좀 더 잘 알 수 있게 만들어 준다.(p.89)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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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동양하숙』에서/ 2019. 11. 22. <서정시학> 펴냄
* 신원철/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200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나무의 손끝』『닥터 존슨』등, 저서『20세기 영미시인 순례: 죽은 영웅의 시대를 노래함』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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