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이슬의 임계/ 이여원

검지 정숙자 2020. 1. 9. 01:33

 

    이슬의 임계

 

    이여원

 

 

  이른 숲, 한참을 걸어도 사방은 고요하고

  아직은 덜 익은 아침이 열려 있습니다

  차가운 밤이 걸어둔 매듭과 매듭

  무거워지는 중심 때문에 풀잎은 조바심을 냅니다

  맑아서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습니다

 

  그때 물방울 하나 또르르 때 묻지 않은 동그라미가 그려지는 순간입니다

  뛰어내리기까지 몇 번의 호흡을 가다듬었을 것입니다

  망설인 자리는 금방 말라

  풋 냄새를 싣고 정오가 지나갑니다

 

  내부에서 내부로 흐르며 왔는데 사는 곳은 모두 외부입니다

  떨어지는 이유는 모두 둥글다는 것일까요 물방울과 땅이 서로 맞닿은 순간

  바닥은 작은 소리 하나 내어 줍니다

 

  정오의 가상무대가 펼쳐지는 중입니다

  스며든 물방울과 자생하는 벌레들은 마지막 잔재입니다

  검은 리본을 단 잔디가 돋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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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빨강』에서/ 2019. 12. 5. <한국문연> 펴냄

  * 이여원李如苑/ 경남 진주 출생, 2012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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