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채석강/ 노승은

검지 정숙자 2020. 1. 7. 01:34

 

    채석강

 

    노승은

 

 

  당신이 먼저 당도했다

 

  기념일이 젖어 가로로 눕는다

  달빛에는 사막도 불어

  넘기는 책장마다 무거웠다

 

    사랑하는 당신은,

    잊히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잊히지 않아서 뒷걸음치는 것이라고

 

  나는 책 한 귀퉁이를 접어 문장을 가둔다

 

  당신의 서문은 누가 읽어낼 것인가

  적어 던진 책들이 층층이다

 

  색인되지 않은 마음이 틈으로 파고들 때

  집어 오지 못한 책들이 파도로 남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달빛은 어두워 그 빛으로는 책을 읽기 어렵다. 달빛 아래서 넘기는 책장들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책장들을 넘기는 것을 그만두고 읽어내고 싶은 문장, 독해하고 이해하고 싶은 문장이 적힌 책장의 귀퉁이를 접는다. 그 문장을 가두는 것이다. "나"가 접어 두는 책장 또는 그 책장에 적힌 문장은 "당신"의 환유換兪이다. 우리는 어떤 문장이 좋아 그 문장을 기억하고 소유(소장)하고 싶을 때 그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그 문장을 옮겨 적거나 그 문장이 적힌 책장을 접는다. 그러나 "나"가 책장을 접어 문장을 가두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 문장을 이해하지는 뭇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이해할 시간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이라는 문장 또는 책장을 앍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나"는 당신을 읽을 수 없고 절망하기에 이른다. "당신"은 "서문"조차 읽히지 않은 채 던져진 책, "집어오지 못한 책" 색인되지 않은 마음"으로 남는다.(p.132-133) (현순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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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나는 구부정한 숫자예요』에서/ 2019. 12. 5. <서정시학> 펴냄

  * 노승은/ 서울 출생, 2005년『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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