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天孤
-아우
김유석
1.
한 채의 거미집에 두 마리 거미가 붙어 있다. 거미는 독거의 족속.
한가운데 꿈쩍하지 않는 놈은 주인이고 주변을 어기적거리는 녀석은,
거꾸로 매달려 중력을 견디는 놈은 통속한 주인이고
무엇이 들었는지, 무거운 염낭을 맨 채 허공을 휘청거리는 저 파계승 같으니
2.
타고나는 것이라 했다.
집 한 채 뜨지 못하고
얹혀산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허공인 줄 모르고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줄도 모른 채 이번 생을 드난 온 거미.
역마 낀 아비가 들러 간 유월, 그 어미는 외로움을 낳았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 "한 채의 거미집에 두 마리 거미"가 동거하고 있다. 김유석은 이 기묘한 동거에서 "한가운데 꿈쩍하지 않는 놈은 주인이고" "거꾸로 매달려 중력을 견디는 놈은 통속한 주인"이라고 명명한다. 그럴 때 주인의 상대가 되는 '통속한 주인'은 정상성을 벗어난 병리적 상태, 이를테면 발모가지를 제 이빨로 끊어내야 했던 고라니와 존재론적 위상이 같다. 그랬기 때문에 '통속한' 주인은 "파계승"이 될 수 있고,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줄도 모"르는 맹목이 될 수 있다. 그는 "집 한 채 뜨지 못하고" "드난"을 살면서 타자의 삶에 충동적으로 개입하고, 그러한 충동과 욕망을 "무거운 염낭"에 꽁꽁 싸두기도 한다. 물론 염낭을 틀어쥔 끈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되면, 그는 염낭을 쥐어짜 울음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 울음은 '독거'가 아닌 '동거'의 후천적 기억에서 발생한 것이다. "거미는 독거의 족속"이라는 선천성을 '파계'함으로써 그는 마침내 후천성의 기억을 삶의 방법으로 삼게 된 것이다.(p.123-124) (문신/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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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에서/ 2020. 1. 2. <상상인> 펴냄
* 김유석/ 1989년《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 1990년《서울신문》신춘문예 시 부문 & 2013년《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시집『상처에 대하여』『놀이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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