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환자의 책/ 김도언

검지 정숙자 2020. 1. 2. 02:17

 

 

    환자의 책

 

    김도언

 

 

  의사를 만나기 전 나는 스스로 적어 넣은 병력의 책을 불에 태웠다. 그 책엔, 과거의 나는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과거의 나는 아직 백치의 미래다 따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내가 처연한 눈으로 책의 상처를 바라보았을 때, 상처가 날 알아보았을 때, 내 눈도 상처를 입었으며, 나는 상처가 곧 단 한 권의 책이란 걸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이 쓰고 있는 상처 입은 나의 책을 갖고 싶었다. 내가 책 안에 써넣고 싶은 것은 상처의 내력과 모험, 그리고 불치의 희망 같은 것이었다. 상처 입은 책은 곧 책의 세포들인 문장을 감염시킨다. 상처가 무서운 건 감염과 전이 때문인데, 문장으로 상처가 감염되었을 때, 이미 책은 손을 쓸 수 없는 위대한 상태에 이른다. 지혜로운 의사는 환자에게 상처를 보이지 않는다. 환자가 상처를 보는 순간 환자는 회복의 의지를 상실하고 맹렬하게 상처에 순종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는 제 몸의 상처를 동경하게 된다. 환자의 책, 환자의 문장은 이런 지배와 구속의 암거래로 만들어진 것이다. 환자는 끝내 의사에게 자신의 가족력을 알리지 않는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착각한다. 책이 환자가 몰래 키운 상처의 훌륭한 은유가 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에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는 바로 그 '고통'을 껴안는 데에서 나오지. 저들의 천국에 속하지 않는자, 오염된 말들을 전파시키려는 불온한 자는 우리가 모르는 고통을 독점한 자이기도  하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고통을 느끼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시인이 지닌 "유전 체계"는 특히나 고통에 예민한 습성을 지녔다고 봐야겠지. 시인의 불온한 습성은 "상처"로만 증명되며, 시인이 "책", 다시 말해 한 권의 시집에는 그가 감행하게 될 "감염과 전이"의 씨앗들이 담겨 있다네. 매끄럽게 통용되는 '어법'을 오염시킬 만한 강렬한 유전적 정보 말일세. 그러니 이곳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환자의 책, 환자의 문장"은 오직 "암거래"로만 유통되는 밀수품과도 같네. 밀수품이란 게 뭔가?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는 불온한 것이지. 환자인 시인이 내놓은 책과 문장이 지닌 "상처의 내력과 모험, 그리고 불치의 희망 같은 것"이야말로 이곳에 세워진 말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라네.

  자네, "지혜로운 의사"에 대해 묻는 겐가? 자네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의사"들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아. 왜냐고? 그들은 시인의 "처연한 눈"과는 전혀 다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네. 오히려 그들은 '날카로운 눈'을 지닌 자들이야. 게다가 그들의 눈에 비친 "상처"라는 건 그저 서둘러 제거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라네. 환자인 시인이 "상처"를 "동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게지. 그럼 왜 "지혜로운 의사"가 환자에게 "상처"를 보이지 않는 것이냐고? 그건 '의사'라는, 이곳의 질서가 보증한 권위를 유지시키기 위함일세. 의사는 "상처"를 독점함으로써 자신이 환자를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하지만 환자가 제 몸에 난 "상처"에 "순종"하는 순간부터, 그건 '제거'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게 돼. 그렇게 된다면 '의사'라는 권위는 당연히 무너지지 않겠는가? 자네는 치료를 둘러싼 종속 관계(의사-환자)가 당연한 거라 생각하나? 세상을 바꿀 "훌륭한 은유"는 전복을 염원하는 기도企圖/祈禱로부터 나오는 법이네. 그것도 "몰래" 말일세.

  다시, '책'에 자네의 눈길을 보내 보게나. 문장에 깃든 "감염과 전이"의 불온한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네. 가난했던 정신을 감염시키고, 생소한 것을 전이하려던 불온한 '책'들이 모두 하나같이 불을 맞이했던 건 익히 잘 알려진 역사이지 않은가? 시인에게 '책'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를 의미하는 듯하네. 그가 말한 '책'의 세계에 대해 누군가는 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지. "책의 지면이 신성한 영토인 까닭은, 그 위를 흐르는 공기가 그것을 읽게 만들고, 일상적인 방의 구태의연한 색깔을 단번에 영원히 바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바래진 것'들의 문장은 과거에 충실한 '증언자'의 손끝에서 나오며, 또한 '시'의 영토를 지키는 '문지기'가 유일하게 할고 있는 암구호일세. 독자인 우리는 그곳이 눅눅한 공기를 마시며, 쉽게 치료되지 않을 '불치'을 상상해야 하네. 신선한 것보다는 황량해진 것을 향해 유독 "동경"의 눈길을 보낸 자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게나. 필시 그들은 자네보다 더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자들일 걸세.(p.148-150) (정재훈/ 문학평론가)

 

 

   --------------

 * 시집 『권태주의자』에서/ 2019. 11. 20. <파란> 펴냄

 * 김도언/ 1999년《한국일보》신춘문예 소설 부문  2012년『시인세계』로 시 부문 등단, 소설집『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악취미들』,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등, 경장편소설『미치지 않고서야』, 산문집『불안의 황홀』, 『소설가의 태도』, 인터뷰집『세속 도시의 시인』등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에 관한 습관/ 한정원  (0) 2020.01.04
참새의 반대말은 개구리/ 김도언  (0) 2020.01.02
너무 많은 휴일/ 최지하  (0) 2019.12.31
춘천처럼/ 최지하  (0) 2019.12.31
고백/ 권박  (0) 201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