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고백/ 권박

검지 정숙자 2019. 12. 29. 00:14

 

    고백

 

    권박

 

 

  밥 먹다 웃다 수다 떨다

  칼로 눈둥자를 도려냈다

 

  악의는 없어?

 

  물음은 칼이다

  무분별해서 우스워 보이고 계속, 계속, 나는

 

  이런 얼굴

  저런 얼굴

 

  낄낄낄 꽃다발처럼 떨고 있는 고백이다

 

  가령, 60도로 기울어진 언덕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인사했다고 하자

  나는, 사랑은 60도 각도에서 시작된다, 라고, 고백했다고 하자

  아니, 그런 종류의 고백이 아니라고 정정당했다고 하자

 

  부딪치는 순간 잠깐만요 고개를 갸웃거리고

  스쳐 지나가고 함부로 인연을 믿고

  정말? 비가 내리면

  발랄하게, 치욕스럽게

 

  어떤 것이든 반성해야 해?

 

  되묻는 고백은 모서리

  움푹움푹 파먹힌 기분

 

  그러므로

              들쥐 들쥐들

              입술 입술들

 

  덫이 필요하다고 하자

  쓰다듬으면 얼굴 할퀴는 고양이가 등장해

  모자를 쓰고 모래가 되었다가 유충처럼 산양의 입을 뒤집은 다음 다시 모자를 쓰고

 

  벗고

 

  유쾌해

  정말? 무례해

 

  칼로

 

  눈동자를

  도려내고

 

  아무렇지 않아서 기만이다

  아니, 기만이 아니다, 갸웃거리는 고개를 잡고서

  기어코, 기만이다, 고백은

 

  채식주의자처럼 극단적으로 유순하고

  사육제처럼 즐거움의 가면을 쓰고 불의의 사고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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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에서/ 2019. 12. 17. <민음사> 펴냄

  * 권박1983년 포항 출생, 2012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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