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처럼
최지하
슬픔은 대부분 후생성이다 불가능의 저편에서 태어나는 모의 같은 그것들 맨 처음이었을지 모를 입맞춤을 무사히 치르고 온 다음 날 유리창에 피었던 춘천처럼 나를 인력引力하던 지루한 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던 새벽 두 시 마냥 엉금엉금 지나갔다
춘천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안개처럼 두껍게 발설해도 좋았다 표정을 내다 버릴 때도 춘천을 이용하라고 일러주고 싶었지만 바라보는 쪽으로 짧아져 가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시작의 지점을 기억해 내는 사실도 어쩌면 그런 일
보살핌 없이 자랐던 이불 속의 발같이 뚜렷한 사실을 맞닥뜨려야 할 때도 춘천의 안개보다 먼저 태어난 후생이 따라와 있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어떤 일의 뒤에서부터 먼 주소를 향해 슬픈 비행을 시작하려는 물방울이거나 눈물의 이름이 춘천으로 불리는 동안 투명하지 않은 것을 향하여 전부를 걸어버린
이 불투명한 저녁처럼
-전문-
해설> 한 문장: 춘천이다. 안개가 두껍게 내려앉은 날에는 가까이 앉은 침묵마저도 불안하다.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도 멀리 줄을 던져 낚시를 하거나 강변을 바라보는 연인들도 없다. "불가능의 저편에서 태어나는 모의 같은 그것들"처럼, 안개는 자르기만 할 뿐 사물과 사물의 끈을 다시 잇지는 않는다. 안개는 무겁고 조용하지만 귀를 잘라낼 정도의 악력握力이 있다. 기억의 어느 장소에서, 시인은 첫 키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지루한 말들의 종이비행기"와 같이 힘없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춘천이다. 안개는 저만치 물러나 있지만, 언제든 다시 올 듯하다. 까닭 없는 슬픔이, 안개가 머물던 장소마다 짙게 깔려 있다. 안개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는데, 두 손으로 휘휘 저으면 너무 쉽게 흩어지지만, 끈끈한 아교처럼 사물에 엉긴다. 슬픔은 철저하게 먼저 온다. 시인은 눈물을 닦으면서 슬픔의 일어섬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는 표정을 내다 버리는 사람을 본다. 정확히는 안개가 표정을 잘라낸 것이다. 그는 춘천을 이용하라고 일러주고 싶었지만 이미 춘천은 안개의 성지다. 모든 사물이 홀로 잘려나간 열매들처럼 우두둑 떨어졌다./ 다시 춘천이다. 안개 속에서 바깥을 바라봤지만, 도무지 그 '바깥'의 역사와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보살핌 없이 자랐던 이불 속의 발같이 뚜렷한 사실을 맞닥뜨려야 할 때도" 먼저 와서 기다리는 '슬픔'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그것은 "슬픈 비행을 시작하려는 물방울"이며, '춘천'이라는 '눈물의 이름'이다. 춘천에 도착하자 어느새 안개가 내려와 무겁게 내리누르지만, 안개는 밀려온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에서 쏟아진 것. 안개는 시인에게 고여 있던 거대한 울음 덩어리다. (p. 133-134)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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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오렌지 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에서/ 2020. 1. 1. <상상인> 펴냄
* 최지하/ 충남 서천 출생, 2014년《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꼭 하고 싶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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