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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택(全榮澤)과 그 문학/ 윤병로

검지 정숙자 2019. 12. 15. 21:51

 

 

    전영택全榮澤과 그 문학

 

    윤병로/ 문학평론가

 

 

  늘봄 전영택은 초기에 자연주의 작가로 지목되었으나 후기에는 그의 목사라는 직업과 관련해서 종교적인 휴머니즘으로 변신해 갔다.

  그는 1894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성장과 함께 평양 대성학교를 끝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아오야마가쿠인대학靑山學院大學 신학부를 졸업했다. 다시 미국 버클리의 퍼시픽신학교를 수학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의 문단 데뷔는 1919년 『창조創造』의 동인이 된 것이 계기가 된다. 『창조』파의 김동인金東仁 주요한朱耀翰 김환金煥 등과 함께 교우交友함으로써 문단에 참여한 셈이다.

  이때 발표한 것은 「혜선惠善의 죽음」과 「천치天癡? 천재天才?」 그리고 「생명生命의 봄」등이 있다. 이것이 출발이 되어 「운명運命」「피」「K와 그 어머니의 죽음」등 단편을 내놓았다. 이 같은 초기 작품들은 『창조』파의 문학 경향과 일치해서 반계몽주의적反啓蒙主義的인 사실주의寫實主義의 계열에 속한다.

  1925년 「화수분」과 「흰닭」등을 내놓음으로써 전영택은 자연주의自然主義 작가로 정착되고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특히 「화수분」은 뛰어난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또는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성공한 전영택의 대표작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화수분」은 '화수분'이란 선량한 가족과 함께 죽음에 직면하는 현장을 작가의 냉철한 안목으로 그려 간 것이었다. 그것은 그 당시 1920년대에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와 염상섭廉想涉의 「표본실標本室의 청개구리」와 함께 자연주의 문학으로 각광받은 것이다.

  '화수분'은 행랑아범의 이름이다. 재물이 자꾸 쏟아져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아니한다는 뜻에서 화수분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화수분'과 그의 아내가 가난에 못 견디어 서로 찾아 헤매다가 길가 소나무 밑에서 추위와 주림으로 서로 껴안고 죽는 비극을 그린 대목이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 장사가 지나가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깨인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이것은 「화수분」의 마지막 구절이다. 형용할 수 없는 처참한 정황을 그리는 데 작가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냉담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해서 독자에게 큰 쇼크를 줄 수 있는 것이 자연주의 수법이 된다.

 「화수분」을 내놓고도 「후회」「어머니는 잠들었다」「보무니」「남매男妹」「첫 미움」등의 창작을 드문드문 발표했지만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비교적 과작寡作이었던 전영택은 일제 암흑기에는 협성여자신학교協成女子神學敎 교사로 또는 『신생명新生命』지와 기독교신문에서 주필을 맡기도 했다. 8 15 이후에는 한때 맹아학교장盲啞學敎長으로 일한 적이 있고,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들의 「복음회보福音會報」에 참여하기도 했다. 1955년에는 기독교문학인클럽의 회장이 되었지만 몇 해 뒤 비명非命의 죽음을 맞이했다.

  해방 뒤에도 간간 소설을 썼지만 별로 큰 수확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 첫 작품으로 1948년에 내놓은 「소」는 그의 종교의식이 밑받침된 가작으로 평가되었다. 말하자면 전영택의 후기 작품으로 기독교적인 인도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소」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아내와는 달리 '홍 주사'는 자기의 희생으로 온 동네가 번영하기를 바란다. 해방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버리지만 자기만은 끝내 농촌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또 '장손이'네 소를 잃자 자기의 소를 내주겠다는 따뜻한 동정同情과 박애博愛가 넘쳐흐른다. 초기의 자연주의에서 볼 수 없는 교화적敎化的인 인도주의의 문학으로 변모된 증거였다.

  이 같은 경향은 그의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女人」「새봄의 노래」「크리스마스 새벽」「강아지」「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외로움」「집」「아버지와 아들」「쥐」「금붕어」등 최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것이었다.

  늘봄 전영택의 창작집으로는 『생명生命의 봄』과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女人』이 출간된 바 있다.

  어쨌든 전영택은 일찍이 신문예 초창기에 『창조』파의 일원으로 문단에 투신해서 자연주의 문학에 공헌하고 뒤에는 박애주의와 인도주의에 몰입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특징을 선명히 드러낸 것이다.(『신한국문학전집』, 어문각, 1976./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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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9-12월호 <기획특집/ 전영택의 삶과 문학/ 작품론>에서

  * 전영택(평남 진남포 출생, 1894-1968, 74세)교통사고로 서거, 한국문인협회 초대이사장 

  * 윤병로(평남 중화 출생, 1936-2005, 69세)/ 195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평론집『한국 현대 비평문학 서설』『한국 현대 비평문학론』『민족문학의 모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