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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_『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 2』/ 하임 포톡

검지 정숙자 2019. 11. 21. 13:34

 

 

  한국전쟁을 쓴 유대인 랍비작가

        하임 포톡

  Chaim Potok,19291~2002   

 

 

           최종고         

 

                         

 

  『한 줌의 흙 I am the Clay(1992)

          

                         

 

 

  나는 한국에서 하임 포톡(Chaim Potok)의 이름도 듣지 못했다. 2000년 무렵 하버드 대학에서 춘원을 연구하는 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자기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작가가 포톡이라 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포톡은 유대인 랍비로 한국전쟁 후 한국에 머물렀고, 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포톡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고, 우리나라에도 그의 소설 『한 줌의 흙 I am the Clay』이 번역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010년 7월 필라델피아에 간 김에 춘원의 따님 이정화 박사에게 부탁드렸더니 바로 나를 펜실베이니아대학 도서관으로 데려다주셨다. 그곳에서 포톡 문서(Potok archive)가 기증되어 있는데, 아직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모두 볼 수는 없어 한국 관계 부분만 복사하였다.

  이어서 수소문하여 미망인이 살고 있다는 포톡의 집을 알아내었다. 예상보다 좋은 집이었는데 가보니 이사를 갔다 한다. 다행히 집주인에게 미망인의 전화번호를 받아왔다. 돌아와 전화를 하니 친절히 새 집 위치를 알려주며 방문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가서 보니 부인도 지성인이고 포톡의 유산이 제법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벽 한쪽에는 하회탈도 걸려 있어 한국을 사랑하는 포톡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부인과 여러 얘기를 나누고 근처에서 점심을 사드렸다. 그랬더니 이틀 후에 유대인들의 모임이 있다고 하며 초대해 주셨다. 거기에 가니 30여 명의 유대인들이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한국을 사랑한 한 유대인 랍비작가를 통하여 순식간에 이렇게 친구와 이웃이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감사했다. 한국문학은 세계도처에 산재해 있는 유대인과 유대문학을 이해하고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작가의 생애

                  

 

  하임 포톡(Chaim Potok, 원명은 Herman Harold Potok)은 1929년 2월 17일 뉴욕의 브롱크스(Bronx)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폴란드에서 건너온 유대인이었다. 4자녀의 맏아들인 그의 유대식 이름은 하임 쯔비(Chaim Tzvi)였고 정통유대 교육을 받았다. 소년 시절에 에벌린워(Evelyn Waugh)의 소설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국 유대교 신학교에서 4년간 공부하고 보수 유대교 랍비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심리치료사 아데나(Adena Sara Mosevitzsky)를 만나 1958년 6월 8일에 결혼하였다. 영문학 석사학위를 맏고 1955년부터 2년간 주한 미군 군목 랍비로 재임하였다. 그는 이 시기를 변혁기라고 불렀는데, 유대인도 없고 반유대주의(antisemitism)도 없는 한국에서 고향의 정통 시나고그(Synagogue, 유대인의 집회장소)에서 보던 것과 같은 신앙을 보았던 것이다.

  한국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로스앤젤레스의 라마(Ramah) 보수 유대 캠프의 책임자가 되었다. 1년 후에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유대교 활동을 하다가 1963년에는 이스라엘에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1964년에 뉴욕으로 와서 유대교 잡지를 편집하고 신학교에서 강의도 하였다. 이듬해 유대교출판회의 주필이 되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에 가족과 함께 다시 이스라엘로 갔다가 1977년에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Old Men Midnight한밤의 노인들(2001)을 내고 뇌암 판정을 받고, 2002년 7월 23일 73세로 펜실베이니아의 메리온(Merion)에서 작고했다.

  그는 작가이면서 화가이기도 했다. 작품 중 1967년의 The Chosen 은 39주간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였고 영화화되었다. 여러 작품 중에서 한국을 직접 다룬 책은 『한 줌의 흙 I am the Clay(1992)이다.

 

 

  작품 속으로

                    

 

 『한 줌의 흙 I am the Clay』은 1955년에 종군 목사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저자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노부부가 피난길에 상처 입은 소년을 구출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다. 이 전쟁에는 미국, 그리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네델란드, 뉴질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에티오피아, 영국, 캐나다, 콜롬비아, 터기, 태국, 필리핀 등 17개국이 UN군으로 참전해 우리를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한 개 국가를 지원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사망자 수가 58,127명인데, 미군의 사망자 수가 54,246명이나 될 정도였다. 또 많은 민간인 피해자도 발생했다. 사망자는 373,599명, 부상자는 229,625명, 납치자는 84,532명, 피난민은 24만 명, 전쟁고아는 10만 명이나 발생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은 그중 한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의 역자 오호근(吳浩根, 1942-2006, 64세) 박사는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I am the Clay 서펑을 읽고 원서를 사서 읽고 감동받아 이 책을 번역했다. 그는 이 번역서를 남기고  기업인으로 왕성히 활동하다 안타깝게도 일찍 타계하였다.

  번역자는 이 책의 맨 뒤에 「하임 포톡의 세계」라는 글을 실었는데, 이 글을 통해 하임 포톡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보수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랍비가 될 때까지 정통 유대교 교육을 받아온 포톡이 작가로서의 꿈을 키운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애벌린 워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등 당시 논란의 대상이 된 작품들을 읽은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가족들이나 유대교의 선생들은 포톡이 전통적인 종교교육에 전념하지 않고 문학으로의 의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그의 문학성은 유대인으로서 또는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상당한 갈등을 극복한 것이다. 이러한 포톡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은 유대교의 가치관이 학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따라서 상상력과 창작성을 발휘해야 하는 소설 저작은 랍비인 포톡의 품위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톡의 뛰어난 묘사력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재능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의 지수는 학문과 종교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의 갈등을 통해 좀 더 심도 있게 인간성의 원초적 동질성을 표출시킨 데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주제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소설의 결말을 눈여겨봐야 한다.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이 결말에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거나 보여주려는 것들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결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자리에 앉은 소년은 창밖으로 노인과 목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플랫폼 흙바닥에서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이 손을 흔들자 그들도 손을 흔들었다.

  늙고 초라한 두 늙은이!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막막함보다는 얼마나 더 편안하고 따뜻한가? 날 좀 도와다오. 이 한 줌의 흙!

  기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책의 번역자는 「하임 포톡의 세계」에서 하임 포톡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인간성의 원초적 동질성을 표출시킨 데 있다"고 했는데, 결말을 읽어보니 이 말의 의미가 와 닿았다. 이 소설에서 전쟁의 상처를 입은 소년은 노인과 목수를 만나 치유될 수 있었다. 인간은 사랑으로 절망을 이겨내고, 소년에게 노인과 목수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한 줌의 흙 같은 존재인 것이다.

  나는 필라델피아대학(UPEN) 도서관에서 본 포톡 문서 가운데 그가 한국에 머문 동안 한국을 공부하기 위하여 손수 쓰고 그린 메모지들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때 사진으로 찍어두었던 것을 이제 여기에 처음으로 공개한다. 소로 쟁기를 가는 모습, 모심기하는 방법, 장례하는 광경 등을 자세히 관찰한 그는 그에 대한 설명까지 적고 있다. 유대인 작가, 외국인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작품을 쓰기 위해 이처럼 노력한 것이다. ▩

 

 

  *블로그주: 여기 싣지 못한 책 속의 사진들/ 포톡의 프로필 사진(p.283), '필라델피아에 있는 포톡의 집(p.284-왼쪽)과 집필하는 포톡(p.284-오른쪽)' 강연하는 포톡(p.288), 'I am the Clay (1992) 초판본'. '한국을 공부하기 위해 포톡이 손수 쓰고 그린 메모와 스케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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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고 지음『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 2』에서/ 2019. 10. 24. <와이겔리> 펴냄

  * 최종고(崔鍾庫)/ 1947년 경북 상주 에서 출생, 서울법대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후 모교 서울법대에서 33년간 법사상사를 가르쳤다, 많은 학술서를 저술하여 2012년 삼일문화상 수상. 2013년 정년 후 시인, 수필가로 등단, 『괴테의 이름으로』(2017)등 시집과 문학서를 내었다. 현재 <한국인물전기학회>, <한국펄벅연구회>를 운영하고 <국제PEN한국본부>, <공간시낭독회>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