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낡은 양말/ 한보경

검지 정숙자 2019. 11. 22. 01:48

 

 

    낡은 양말

 

    한보경

 

 

  짙은 살 냄새를 베고 누웠다

 

  남루해진 동서남북이 구겨진 장면을 풀어내린다

 

  그윽한 것,

 

  무심히 벼려놓은 의외의 시선 같은 것,

 

  그늘진 변방의 무릎에 기대어 혼곤히 잠든,

 

  허락된 한 쌍의 평화는 비로소 서로를 마주하고 누웠다

 

  지나온 여정은 너무 길었고

 

  구겨진 무례함은

 

  가장 낮은 걸음이 얻어낸 쪽잠 같은 덤, 어쩌다

 

  너무 흔한 꽃의 축사 같은 것

 

  얼마나 남았을까

 

  시든 풀잎처럼 숨 고를 수 있는 시간은

 

  헐렁해진 심장이 마지막 출정을 떠나는

 

  지금은, 아득한 변방

 

  가장 낮은 자세는 아직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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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문학』2019-가을호 <시>에서

  * 한보경/ 2009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여기가 거기였을 때『덤,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