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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_POEMUSIC 『미스틱』/ 훈 후르 투 Huun Huur Tu

검지 정숙자 2019. 11. 3. 00:15

 

 

    훈 후르 투Huun Huur Tu

 

     장석원

 

 

  음악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여태껏 그 답을 알기 위해 걸어왔는데, 지금도 답을 모른다. 답이 없다는 사실이 정답일지 모른다. 이런 내가 시와 음악을 동시에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다. 훗날 시와 음악의 '황홀'의 비밀을 알아낼 것이라고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낙타 대상들(「Camel Drivers」)과 나는 걸어간다. 음악의 대지 쪽으로, 낙타처럼 시와 함께.

  아바(Abba)와 비틀즈(Beatles)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팝송 속에서 맞이한 대학 시절, 낮에는 민중가요와 혁명가의 폭격을 받았다. 밤은 술과 꿈과 낭만의 시간. 김광석, 시인과 총장, 양희은, 엘튼 존(Elton John), 왬(Wham)…… 그 끝에 전영혁과 성시완, 군대에서 얼터너티브 락과 메탈을 만났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어느 대학 락 밴드 리드 기타리스트였다가 나의 군대 후임이 되었던, 총순에게 너바나(Nirvana)와 메가데쓰(Megadeth)를 소개받았다. 청춘의 불꽃이 타올랐고, 몸은 재가 되었고, 음악으로 무장한 채 세상으로 들어갔다. 생의 고비마다 음악이 있었다. 석사 졸업 무렵에는 억셉트(Accept)가, 박사 과정 중에는 펄 잼(Pearl Jam)이, 학위를 받고 황야에 버려졌을 때에는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와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2007년 가을, 연옥의 끝에서 시인 조연호가 소개해 준 훈 후르 투를 만났다. 음악이 구원이었다.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아끼고 숨기고 싶어 말하거나 내보이기를 꺼렸다. 좋은 음악을 혼자만 듣겠다는 심보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파악하기가 어렵고, 있다 해도 상세하지 않다. 그러나 음악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접하기가 쉬워 다행이다. 시간이 흘렀고 나도 변했다. 세월이 그들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그들이 더 늙기 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투바(Tuva) 공화국의 밴드 '훈 후르 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이 생전에 가고 싶어 했다는 곳, 투바, 바이칼 호 근방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 인구의 대부분은 몽골인. 투바공화국의 러시아인들은 몽골 사람들을 따라서 라마교를 믿는다고 한다. 국토의 남쪽에는 알타이 산맥이, 가운데에는 초원이, 북쪽에는 타이가 삼림이 펼쳐져 있는 곳. 대자연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곳, 그곳 출신 훈 후르 투의 음악은 낯설고 신비롭다. 몽골의 전통음악을 기본으로 한 이들의 음악에는 '회메이'(투바어로 'Хөөмей', 몽골어로 'Хөөмий'(호미), 러시아어로 'Хоомей'(호메이, 후미(khoomei)라고도 한다))와 '시기트'(sygyt:팔세토 이외에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창법)가 흘러넘친다. 영어로는 'throat singing'이라고 부르는 '회메이', 저음, 중음, 고음을 동시에 발성하는 기법. 나는 리드 싱어 카이갈-올 킴-올로비치 코발릭(Kaigal-ool Kim-oolovich Khovalyg)의 목소리를 듣는다.

  태양의 프로펠러('Huun Huur Tu'의 의미는 'sun propeller'다)를 바라본다. 대지를 어루만지는 태양의 빛살 속에서 노래하는 인간이 보인다. 그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는다. 초원의 훈향薰香을 뚫고 멀리 전진한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인간의 육체는 진동한다. 그의 목소리는 마음의 현을 튕긴다. 바람의 몸이다. 그의 노래. 현대시가 포기한 영성과 주술을 품고  있는 소리. 바람을 머금은 초록의 음악을 점령한다. 음악이라는 영원한 현재 속에서 거품이 되는 시간을 본다. 그들의 「Don't Frighten The Crane」은 초혼招魂하는 육성을 길어 올린다.  

  2011년 누나가 죽었다. 한 번은 이겨 냈지만, 재발한 병 때문에 모르핀으로 통증을 지우고 있었다. 마른 꽃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곧 그녀가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누나의 방에서 사춘기의 나는 음악과 문학을 배웠다. 그곳에서 인상파의 화첩을, 잡지 『현대문학』을, 엘튼 존(Elton John)의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만났다. 그곳에서 전축에 레코드를 걸고는 황홀경에 젖었다.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의 「Long Distance Voyager」가 첫 경험이었다. 

  그녀가 떠난 그해 봄날의 꽃은 아름답지 않았다. 꽃의 소음 속에서 나의 일상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몸의 통증이 아니었다. 방에 나를 가둔 채 넋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 내 곁에 그들이 있었다. 바람 속의 먼지가 되고 싶었다. 떠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한 줌 재가 되어 남겨졌다.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곳에 가면 그녀가 있을 것 같다. 바람의 출발점이 보인다. 그곳의 하늘에는 장엄한 태양의 프로펠러가 돌고 있을 것이다. 공간을 흡입하는 소실점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무하는 노래가 들린다.

 

 

  나는 고아, 나는 외톨이

  가엾게도 나는 아이일 때 죽지 않았네

  만약 내가 아이였을 때 죽었다면

  나는 절대로 고통받지 않았으리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나는

  가엾게도 요람에서 죽지 못했네

  만약 요람에 누워 있을 때 죽었다면

  나는 고통에 들지 않았을 텐데

 

  비참한 아기 새

  둥지도 없이 남겨졌네

  비참한 아기

  엄마 없이 남겨졌네

 

  운명

  사람은 그것을 바꿀 수 없네

  죽은 엄마

  그 누구도 그녀를 데려올 수 없네

   -전문, Huun Huur Tu, 「Orphan's Lament

 

 

  2008년 11월 18일,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판타지 스튜디오 라이브 영상으로 「Orphan's Lament」를 듣고 본다. 고아가 된 '나'는 일찍 죽었어야 했다. 고아였던 '나'의 삶은 온통 고통뿐이었다. 고통의 끝에서 다시 '나'를 돌아본다. 왜 고아가 되어야 했던 것일까. 누가 '나'를 고아로 만든 것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인 '나'는 어머니의 요람에서 죽었어야 했다. 젖을 떼기 전에, 걷기 전에, 언어를 배우기 전에 죽었다면 '나'에게 고통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삶의 전체가 고통으로 얼룩진 '나'는 '비가'를 부를 수밖에 없다. '나'를 떠나보내기 전에, 지나온 인생을 들여다보지만, 결국 '나'의 생은 고통뿐이었음을 깨닫는다.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나려 한다. 둥지도 없이 버려진 아기 새처럼, 그날, 엄마 없이 남겨진 비참한 아기가 있었다. '나'는 고아였다. 운명이 '나'를 지배했다. 죽은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엄마를 그 누구도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나'의 삶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엄마, 엄마…… 이제 엄마에게 가려고 해요.

  나의 꿈은 그들의 라이브를 이 땅에서 보는 것. 세계에는 아름답고 훌륭한 음악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음악들은 시이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만났으면 좋겠다. 베이시스트 마이클 맨링(Michael Manring)이 주최한 작은 라이브. 태양의 프로펠러 아래에서 음악에 젖어 드는 청중의 표정 나의 바람이 이루어질까. 투바에 가면 태양의 프로펠러를 만날 수 있을까.

  시를 넘어서는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 시를 무력하게 하는, 음악이라는 두려운 천사가 바람의 시원에 숨어 있다. 훈 후르 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신나는 곡이 시작된다. 광막한 초원 하늘의 구름 사이로 펼쳐진 태양의 프로펠러가 회전한다. 음악의 마지막 천국, 민속 음악. 킹 크림슨의 베이스 주자 토니 레빈(Tony Levin)과 다국적 음악 실험 팀 고티카(Goatika)가 훈 후르 투의 멤버와 함께 「Kozhamyk」를 연주한다.

 

 

  우리 셋, 우리 넷

  우리는 서른처럼 강하지

  우리에게 대항하는 서른은 무엇일까?

  아무도 우리 셋에 대적하지 못하네

 

  우리 넷, 우리 다섯

  우리는 마흔처럼 강하지

  우리에게 대항하는 마흔은 무엇일까?

  아무도 우리 넷에 대적하지 못하네

 

  우리 다섯, 우리 여섯

  우리는 쉰처럼 강하지

  우리에게 대항하는 쉰은 무엇일까?

  아무도 우리 다섯에 대적하지 못하네

 

  우리 여섯, 일곱

  우리는 예순처럼 강하지

  우리에게 대항하는 예순은 무엇일까?

  아무도 우리 여섯에 대적하지 못하네

    -전문, Huun Huur Tu, 「Kozhamyk」

 

 

  나는 지금 카이갈-올 코발리 앞에 앉아 있다.

 

 

  자작나무

  뼈다귀

 

  해에 먹힌다

 

  누이가 죽지 않았다면 흰 눈동자 나도 지녔을 텐데

    -전문, 장석원 「백야白夜」(『리듬』) 

 

 

  그가 나를 눈물이 되게 했고, 다음 생으로 인도했다. 내가 간취하고 싶었던 이미지는 흰 밤. 죽은 자와 산 자가 분리되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을 본다. 그 밤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자작나무 뼈다귀가 과거에서 현재로 뚫고 나왔다. 나는 구멍 난 채 백야 같은 피를 흘린다. 북소리가 대지를 건드린다. 지난가을 카이갈이 부르는 「Tuvan Internationale」를 듣다가 대곡大哭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배신과 상실의 석양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죽어 가는 것들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으라고, 살아서 복수하라고, 그것마저 버리고 창공을 선회하는 독수리가 되어 그 시체를 뜯어 먹으라고, 나를 위무했다. 숨 쉴 수 있었다. 생명이 거기에 있었다. 음악의 시작이었고, 언어의 끝이었다. 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음악이 나를 안아 주었다. 음악이 나를 자유로 이끌었다. 인생의 음악, 훈 후르 투.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시작되자마자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사라지면서 시작되고자 한다

 

  몰래 피어나 버린 꽃처럼 흘러오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작되면서 사라지고 있다 전격적으로 매일매일

 

  사라지면서 시작되려 한다 그것은

 

  너에게도 죽을 마음이 남아 있는가

 

  나무가 제 그림자 속에 뼈를 감추듯

 

  사라지면서 시작되고 있는

   -전문, 채상우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리튬』)

 

 

  사랑이 시작되려 한다. 채상우의 시에 세 번 사용된 '그것', 사랑. 그것을 '음악'으로 바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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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원 POEMUSIC『미스틱』에서/ 2019. 9. 30. <파란> 펴냄

  * 장석원/ 2002년《대한매일》(현《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아나키스트』『태양의 연대기』『역진화의 시작』『리듬』, 산문집『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