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통/ 차주일

검지 정숙자 2019. 10. 22. 22:40

 

 

    불통

 

    차주일

 

 

  치매에 피정하여 감정이 제거된 목소리를 듣고 나면, 꼭 며칠 지나서야 회한이 몰려온다. 살아서 제 삶을 생략한 죗값에 살아서 제 후생을 사는 사람으로부터 발송된 이 기분은 가장 먼저 얼어 가장 늦게 녹아 가장 먼저 축축하여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우는 한곳 같다. 나는 가장 오래 딱딱하여 가장 오래 무른 한곳을 기르는 사람이거나 생략으로 생존하는 한곳을 살아내서 운명의 뜻을 알아내야만 하는 의무인 것 같다. 이런 날은 깨나는 싹의 유채색보다는 무채색으로 썩은 씨앗의 통증을 이해하는 듯하다. 늦게 도착하는 목소리는 통증의 억양으로 내 몸속을 떠돌지만, 기도문처럼 내 마음에 이르지 못한다. 마음이 일생보다도 멀어 사람은 떠돈다. 도착하지 않은 목소리를 불러오기 위해 가장 원통한 지칭을 찾아 외칠 때가 있지만, 사람의 발음기호로 부를 수 없는 호칭이 있어 나는 운명의 뜻을 적지 못한다.

 

  

   --------------------

   *『시로여는세상』2019-가을호 <시로여는세상의 시인들>에서

  * 차주일/ 2003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냄새의 소유권』『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