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E=mc2 / 권혁웅

검지 정숙자 2019. 10. 22. 12:42

 

 

    E=mc2

 

    권혁웅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40년 만에 만난 동창이 물었다 "너도 나한테 맞았니?" "아니, 우린 같은 반도 아니었고 등하교 길도 달랐어." 짱에게는 원죄가 있으며 원장면도 있다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그는 나를 때리던 아득한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모세가 산 정산에 오르자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땅을 그에게 보여주고 말씀하셨다 "이 땅을 약속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 하지만 너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모세는 갈 수 없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죽었다 용용 죽겠다가, 정말로 죽었다

 

  오크통 속 와인이 숙성되는 동안 줄어든 적은 양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죠? 더 깊어지기 위해서는 성실을 견뎌야 한다고요? 어느 선생이 그 따위 교훈을 가르치죠? 그 천사는 그냥 삥을 뜯은 것뿐이에요 40년 전 나의 사랑하는 동창처럼

 

  다섯 살은 예의바른 나이다 아이는 누구에게나 인사한다 안녕, 엄마. 안녕, 판다. 안녕, 맘마. 안녕, 응가. 방금 빅뱅을 끝낸 우주가 마이너스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라고 한다 현생 우주, 향년 137억5세로 화장실에서 별세別世하다 지가 세상이면서

 

  저승문을 지키는 개처럼 실은 사람에게도 머리가 셋이다 소개팅 나가 보면 안다 하나가 상냥하게 응대하는 동안, 다른 하나는 투덜대고, 마지막 하나는 주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있다 너, 날 뭘로 보는 거야? 나, 실은 머리 셋 달린 사람이야

 

  빛은 질량이 0이며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상에 막 도착한 아기는 주먹을 꼭 쥐고 있다, 뭔가 분한 일이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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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2019-가을호 <시로여는세상의 시인들>에서

   * 권혁웅/ 1997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마징가 계보학』『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