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부르튼 숲/ 김건영

검지 정숙자 2019. 10. 30. 00:46

 

  <2019, 제20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中

 

    부르튼 숲

 

    김건영

 

 

  식탁 앞에 누군가 있다 곰팡이처럼 얌전하게 접시에 앉아서 손을 흔든다 너무 커다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군체입니다 우리이 이름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르튼 숲으로만 불러 주세요 우리는 모두 죽었지만 이렇게 접시 위에 있겠습니다 아직 뜨겁습니다 한때 우리는 누군가의 시금치이자 케일이었습니다 훌륭하게 바스락거리는 잎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부글거리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멀고 먼 곳에서 모여든 숲

  합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중력 앞에서 경건합니다 접시 위에 엎드린 우리를 보세요 우리는 선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기도합니다 자 이제 더욱더 선량한 입김으로

  우리의 부러진 육체를 휘젓고 녹아내린 영혼을 씹어 삼켜 주세요 우리가 당신이 되겠으니 당신의 허기를 먹고 우리의 모든 맛으로 스미겠으니

   -전문-

 

  * 심사위원 : 유성호  강동우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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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2019-가을호 <특집 제20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에서

  * 김건영/ 1982년 전남 광주 출생, 201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다시다'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