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유종인_ 마음의 기척에 풍경(風磬)을 매다는 일(발췌)/ 시(詩)처럼 : 정수자

검지 정숙자 2019. 10. 28. 01:47

 

<시조시>

 

    시처럼

 

     정수자

 

 

  흐느끼다 깨어보니   

  베개 맡이 멀끔하다

 

  누가 운 건가

  꿈의 꿈 내편인가

 

  내장을

  다 쏟았는데

 

  얼척없다

  시처럼

 

  쓰린 꿈 잇다 말고

  폰이나 또 집어들고

 

  잘 지내 일없이

  못 지내 열없이

 

  시처럼

  척하는 동안

 

  지척들에

  금이 간다

   -전문-

 

 

  ▶ 마음의 기척에 풍경풍경花을 매다는 일(발췌)_ 유종인/ 시인

 만남의 묘용妙用은 대단한 이해관계나 확연한 목적의 포석이나 획득만이 아니라 무심한 듯 또 쓸쓸하고 덤덤한 듯 찾아드는 어떤 기척으로도 동롱해지기도 하는가. 정수자가 말하는 그리고 건네는 시의 기척이 또 그런 듯싶다. 어쩌냐 하면, "얼척 없음"과 "일없"음과 "열없"음과 같은 소소한 기분들이 또렷한 감정들과는 조금 비켜선 자리에 있는 번외番外의 감정들로 가만히 도드라지는 것들이어서 새로운 시적 여정을 도모하는 기미機黴가 갈마들기도 한다. 뚜렷한 대상과 거기에 따른 인상印象과 시적 관념이 수수收受되는 것만이 아니라 무슨 소소한 기분처럼 '척하는 동안' 곁들여지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니, 이런 것은 불가해한 기척으로 시를 옹립한다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또렷한 방증傍證을 통해 시가 "詩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쓰린 꿈 잇다 말" 듯 무용無用한 듯 곁을 스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니 시인은 "지척들에/ 금이 간다"고 시가 다가들 때의 염두念頭를 슬몃 "일없이" 혹은 "열없이" 바라보는 건지도 모른다.(p.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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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2019-가을호 <집중조명, 이 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정수자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집 『그을린 입술』 저물녘 길을 떠나다』등 

  * 유종인/ 1996년《문예중앙》으로 시 부문 & 2003년《동아일보》로 시조 부문 & 2011년《조선일보》로 미술평론 부문 당선단, 시집『사랑이라는 재촉들』 『숲시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