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김점용_ 풍경과 상처/ 가을이 왔다 : 오규원

검지 정숙자 2019. 10. 15. 03:21

 

문예바다』2019-가을호 <화보/ 풍경과 상처 24>

 

    가을이 왔다

 

    오규원(1941~2007, 66세)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고

  현관 앞까지 가을이 왔다

  대문 옆의 황매화를 지나

  비비추를 지나 돌단풍을 지나

  거실 앞 타일 바닥 위까지 가을이 왔다

  우리 집 강아지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사이로 왔다

  창 앞까지 왔다

  매미 소리와 매미 소리 사이로

  돌과 돌 사이로 왔다

  우편함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왔다

  친구의 엽서 속에 들어 있다가

  내 손바닥 위에까지 가을이 왔다

     -전문-

 

 

    가을을 생각할 수 없을 때 "가을이 왔다" 좋은 것들은 모르는 사이에 온다. 봄에 피는 꽃이 그렇고 불현듯 다가오는 사랑도 그렇다. 그것들은 저절로 스미는 것이어서 자기가 온다는 기척을 내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강아지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사이로" 매미 소리와 매미 소리 사이로", "돌과 돌 사이로" 존재와 존재 사이로 스며서 그대로 불쑥 존재가 된다. 투박한 마음의 근육들이 움직여 간 손편지가 기다려지는 가을이다. ( 김점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