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아돌하』를 내면서>
대상적 사유, 맥락적 사유
임승빈/ 본지 주간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닫힌 언어closed language'의 경우, 그 의미를 통상 '사전적 의미'라고 한다. 그것은 언어와 의미의 관계가 1대 1, 즉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의미만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만,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듣는 사람에게 보다 더 정확히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나 느낌의 창조를 목적으로 하는 '시적 언어open language'는 언어와 의미의 관계가 1대 다수, 즉 하나의 언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창조적 의미' 또는 '관계의미relation meaning'라고 한다.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인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된 의미이기 때문이고, 또 은유의 취의tenor와 매제vehicle'처럼 두 개 이상의 개념 사이에서 생겨나는 의미이기 때문에 관계의미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바탕으로 한 '자기 원인적 사유'를 극복하고, 새롭게 '상호 원인적 사유'를 제시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바람직한 시적 사유나 예술적 사유는 맥락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deference'는 구조주의structuralism에서 따온 것인데, 모든 의미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갖는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니, 굳이 들뢰즈 철학이 아니더라도 구조주의는 그 자체가 작품을 이루는 요소, 즉 모티프motif와 모티프의 관계에 발생하는 의미subject에 주목하는 맥락적 사유체계가 아닌가.
대상적 사유는 하나의 대상만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고, 맥락적 사유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갖는 맥락, 즉 그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대상과 대상이 형성하는 맥락, 또는 그 대상과 대상의 사이를 생각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 어떤 하나만이 중심l(원인)이고, 나머지는 다 주변(결과)으로 보는 사유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중심이고 원인으로 보는 사유인 것이다.
예술 작품을 통해 이런 맥락적 사유를 일찍이 자각한 사람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ke이다. 그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조각 「입맞춤」과 「영원한 우상」이라는 작품에 댜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입맞춤>이라 불리는, 소녀와 사내의 저 위대한 군상이 지니는 마력은 삶을 이같이 지혜롭고 정당하게 분배한 데 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접촉면들로부터 물결이, 즉 미와 예감과 힘의 전율이 이 육체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리하여 두 몸뚱이 위의 모든 자리에서 이 입맞춤의 축복을 보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데 더욱 경이로운 또 다른 입맞춤이 있으니, 이를 중심으로 정원을 둘러싼 벽처럼 <영원한 우상>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솟아오르고 있다. (중략)
이 작품 속에는 어딘지 연옥과 같은 분위기가 살아 있다. 천국은 가까우나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으며, 지옥도 가까이 있어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여기서도 접촉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두 육체가 접촉하고 또 여인이 제자신과 접촉하는 데서 온갖 광휘가 발산된다.(Rainer Maria Rilke, 안상원 역, 『릴케의 로댕』 (도서출판 미술문화, 2012) pp.45-48.
두 작품이 다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지만, 릴케는 여기에서 두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두 육체가 함께 빚어내고 있는 관계로부터의 이미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육체 사이에 지혜롭고 정당하게 분배된 삶, 두 육체의 접촉면들로부터 생성되고 있는 물결, 즉 미와 예감과 힘의 전율을 보아내고 있다. 가까이 있으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천국,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지옥을 두 육체를 통해 확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육체의 접촉으로 새롭게 발산되는 광휘까지를 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릴케의 맥락적 시선은 역시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을 통해서 드디어 작품에 관여하는 대기(공간과 하늘)까지를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이다.
직접 작품을 제시하지 않고 하는 말이라 다소 막연하긴 하지만, 어떻든 맥락적 사유는 아주 중요한 시적 사유, 또는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눈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오규원 시인의 환유적 사유도 이런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상적 사유는 본질nature을 지향하는 배제적 사유이고, 맥락적 사유는 실재reality를 지향하는 수용적 사유다. 때문에 대상적 사유는 과학적이고, 맥락적 사유는 필연적으로 인문학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맥락적 사유를 통해 우리시가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생각이다.(p.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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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아돌하』 2019-가을호 <『딩아돌하』를 내면서』>전문
* 임승빈/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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