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감태준

검지 정숙자 2019. 9. 4. 15:41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 : 올바른 시인을 중심으로

 

    감태준

 

 

  시인은 평범한 개인이자 그 이상의 어떤 존재입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이웃을 모함하는 그런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시인은 공정합니다. 이웃의 진면목과 존재가치를 애정 어린 눈으로 성찰하고 재해석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유와 진실을 옹호하고 고귀한 영혼을 수호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투시하고 정의하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노래합니다. 거리에 뒹구는 가랑잎에서도 존재의 영원성과 존엄성을 읽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완벽하게 자아를 소외시키고 또 완벽하게 자아를 정립합니다. 지나간 날들을 불러 재편성하고 미지의 세계와 끊임없이 교신합니다.

 

  문학은, 특히 시는 언어와의 싸움입니다. 언어의 세례를 받지 않는 한 시인의 정신세계는 암흑에 묻혀버립니다. 언어는 시인이 성찰하고 창조하고 재해석한 세계를 드러내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미숙했던 것을 성숙하게, 흐릿했던 것을 선명하게, 얽히고설킨 것을 정연하게 편성하고 의미화하기 위해 시인은 막막한 언어의 골짜기를 방황합니다. 표피적이며 표상적인 언어, 내포성과 함축성을 띤 언어의 미로에서 시적 의도에 부응하는 단 하나의 언어를 찾는 일은 진실로 고해 그 자체입니다.

 

  시인의 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존재의 해방을 기도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유의 영역을 확대하고 앎의 대상을 축적합니다. 독서와 사색과 명상을 끊임없이 투여하지만 시인이 추구하는 흡족한 성찰, 흡족한 지혜에 이르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이것을 알면 저것을 모르고, 저것을 알면 모르는 이것이 또 나타납니다. 여행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는 것이 힘이 되지만 미지에 대한 갈망은 끝을 모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가족은 일상입니다. 일상은 갈망의 끝에 가닿지 않습니다. 갈망은 시인이 죽는 날까지 안고 가야 할 저주받은 동반자입니다.

 

  여기에 시인은 두 방향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는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하는 삶입니다. 개인차는 있으나 문제는 두 삶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데 있습니다. 황금의 상상력으로 배부른 무소불위의 제왕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빵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시를 써서 빵을 대는 것은 전설입니다. 항간에서는 시인의 현실을 네 부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시도 되고 빵도 되는 시인, 시는 되는데 빵이 안 되는 시인, 빵은 되는데 시가 안 되는 시인, 이보다 정말 불행한 이는 시도 빵도 안 되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 하지만 시인과 빵의 불가분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아픈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빵보다 중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인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입니다. 스승은 시업보다 생업보다도 사람공부를 으뜸으로 쳤습니다. 사람공부의 핵심은 '사람답게, 사람다워지는 것'입니다. 시인이 홀로 높다 해도 사회적 존재입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스승의 당부대로 사람보다 자신의 이념을 앞세우지 않으며, 이념이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알고 실천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생득적이라는 노자의 주장이나 경험적 후천적이라는 고자의 철학을 넘어선 시인 본연의 자격이자 품격입니다.

 

  그러니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우리 모두 진실로 시인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성원합시다. 시를 즐겨 찾아 읊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성원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

 

  감태준/ 본지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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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함께』창간호 001/ 2019-여름호(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