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安市城
진원종
영화 '안시성'을 감상했다. 18년 9월 19일 개봉, 관객이 5백 40만 명을 넘었고, 프랑스에서도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김광식 감독, 러닝타임 135분이다.
처음 당나라 수십만 대군의 공격소식을 들은 연개소문(유오성 분)은 15만 병력을 이끌고 출동하였으나, 광활한 벌판에서 대군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작전의 실패였고 살아난 자는 겨우 3만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압록강을 넘어 중국의 만리장성 가까이 확장할 정도로 광대했다. 고구려는 이 지역에 여러 개의 성을 두었는데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 분)은 개모성, 백암성, 요동성, 비사성 등을 함락시키고 이제 안시성을 친 후 곧바로 평양성을 공격할 요량이었다. 전쟁의 신이라 불렸던 당 태종에게 안시성은 금방 무너뜨릴 것 같았을 것이다. 이세민은 처음부터 여러 개의 투석기投石機를 이용해 커다란 돌덩어리로 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또 5층으로 된 공성탑攻城塔을 만들어 그 위에서 불화살을 쏘아대었고, 커다란 당목撞木을 당차에 싣고 성문을 때려 부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랙해왔다. 그러나 안시성주 양만춘(조인성 분)은 역전의 명장이었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서 쌓은 안시성인 데다 진흙과 돌을 섞어 만든 견고한 성이라 성벽이 잘 무너지지 않았다. 양만춘은 기름주머니와 불화살로 적군의 머리 위에서 터지게 했으며 성문이 부서졌을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통나무를 엮은 그물망 장치로 성 안에 들어온 적들을 물고기 잡듯 포획 · 살상하는 등 방어에 소홀함이 없었다.
초조해진 이세민은 마지막 수단으로 안시성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토산土山을 쌓기 시작한다. 토산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성민들은 땅굴을 파고 토산 밑으로 들어가 땅굴을 받치고 있던 기둥을 도끼로 찍어 무너뜨리는 방법을 써서 토산과 함께 몰사한다. 안시성으로 연결되는 가교를 건너 공격하려던 당나라군은 토산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자 아수라장 속에서 낙엽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구려 군사들은 토산을 점령하고, 양만춘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 쓰던 신궁으로 이세민에게 화살을 날린다. 화살은 이세민의 왼쪽 눈에 정확하게 맞았다. 때맞춰 연개소문이 지휘하는 고구려의 지원군이 기세 좋게 달려온다. 마치 서부영화의 전설 '역마차'에서 아파치들에게 쫓기던 존 웨인과 몇 명의 백인들이 실탄도 떨어져 거의 몰살당하기 직전, 공격 나팔소리와 함께 바람처럼 달려오던 기병대처럼…. 눈에 깊이 상처를 입은 당 태종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세민은 당나라로 돌아간 뒤 부상의 후유증으로 3년 후에 죽었다고 한다. 절대 고구려는 공격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양만춘은 5천 군사로 이세민의 2십만 친정군親征軍은 을 물리친 것이다. 645년의 일이었다. 현대전의 육군 전술교범에는 방어부대가 3배의 공격부대를 저지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고구려는 무려 40배의 당나라 정예군을 막아낸 것이다. 기적이었다. 기적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었다. 성을 지키겠다는 성주와 병사들의 결연한 의지와 평소부터 쌓아온 훈련, 양만춘의 뛰어난 전략 전술과 리더십, 그리고 성주를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따르던 병사들과 성민들의 값진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기록을 보면 고구려는 705년, 백제는 678년, 신라는 992년의 역사를 유지하였고, 고려가 474년, 조선이 51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여러 제후국들은 대부분 2~3백 년 존속했다가 사라져갔다. 가장 길었던 한나라도 426년, 당나라도 289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 시대에 몽고의 7차에 걸친 침입이 있었고 조선조 때도 청나라의 속국이 되다시피 국토가 유린되었지만, 나라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1910년 8월 29일 강제로 체결된 한일합방조약으로 시작된 36년간의 일제강점기에는 국권이 침탈되었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학도병 징집도 모자라 역사를 왜곡시키고 심지어 개인의 이름과 언어까지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함으로써 우리의 정신과 문화까지 없애려 했다. 그러나 끝내 이겨내고 독립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것은 외세의 도움도 있었지만 면면히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애국선열들의 목숨을 바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소국인 것 같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민족끼리 싸운 한국전쟁이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외세에 의해 다시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사주를 받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한을 기습 공격한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유엔군의 참전과 맥아더 장군의 전격적인 인천상륙작정으로 서울을 수복하였고, 계속 전진하여 선두부대는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기도 했다. 남북이 통일되기 직전 예상치 못했던 수십만 중공군이 은밀하게 북한에 가세함으로써 다시 후퇴하게 되었고,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휴전선이다. 유엔의 조정으로 휴전협정이 되었으나 피아간에 총 270여만 명의 사상자(포로, 실종 포함)와 천만 이산가족, 그리고 파괴된 삶의 터전들과 폐허로 변한 국토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21세기가 된 시점이다. 안시성 영화의 전투장면처럼 인간의 생명과 문명을 말살시키는 잔인한 전쟁은 물론이려니와, 핵무기 같은 대량 살상무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려야 한다. 인간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보다 성숙된 자세로 모두의 꿈을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는 나라, 빛나는 자유 대한민국으로 영원히 존속되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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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283호 <散文>에서/ 2019. 1. 30. 발행
* 진원종/ 전북 전주시 완산구 강변로 98, (……)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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