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닫힌 대문 빗장을 여는 그리움 1/ 지연희

검지 정숙자 2019. 5. 14. 17:31

 

 

    닫힌 대문 빗장을 여는 그리움 1

 

    지연희/ 시인 · 수필가

 

 

  먼 기억의 통로를 지나 닫힌 대문 빗장을 열고 서서히 다가서는 그리움, 그 그리움을 깃을 여는 공간 속에는 시간과 시간으로 직조한 질퍽한 삶들이 아름다운 나비 떼의 유희로 다가선다. 언제 어디서나 눈이 열리고 귀가 밝아지는 시간의 흔적 속에 묶인 이야기들이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말을 일찍이 푸시킨은 설파하였다. 오늘은 희미한 기억의 올로 견고하게 짜여진 그리움을 만나는 날이다. 1983년 12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한 해 동안 당선된 신인문학상 장르별 당선자와 제20회 한국문학상 수상자(윤제근 평론가 -만해시와 주제적 시론)의 시상식을 개최했다.

  새내기 신인문학상 당선자들은 세종문화회관 넓은 세종홀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준비된 좌석에 앉아 있었다. 다소의 긴장감으로 얼굴을 붉히던 나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행사의 순서를 기다렸다. 당시 한국문인협회의 수장이신 김동리 이사장님을 비롯한 몇 분의 원로 문인들을 경이롭게 뵐 수 있어서 가슴은 마구 두근거리고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이날의 행사는 서울시장이 대한민국 문학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준비하고 축사를 위해 참석한다고 했다. 해마다 12월이면 송년 행사를 겸하여 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한국문학상 시상을 하는 영광스런 자리였다. 행사장을 인파로 가득 채운 세종홀은 문인들의 잔치답게 서로 반가운 인사를 교환하는 뜨거운 열기로 충만했다.

  1983년 당시 신인문학상 수상자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에는 이상문 소설가, 곽의진 소설가, 이희자 시인이 기억나는데, 모두 삼십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행사가 시작되고 뒤늦게 도착한 곽의진 소설가가 특별히 맞추어 입었다는 아름다운 한복 차림의 성장은 이날의 기쁨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후 가슴 부푼 등단의 기쁨을 간직한, 장르는 다르지만 가까이 교류하던 우리는 비교적 젊은 작가로 문학에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월간문학 출신 문인이라는 자긍심이 더 큰 의욕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소설가로 시인으로 수필가로 각기 제 몫의 자리를 만들고 이상문 소설가는 『황색인』, 곽의진 소설가는 『비야, 비야』, 이희자 시인은 『소문 같은 햇살이』, 지연희 수필가는 『그리운 사람이 올 것만 같아』의 작품집을 출간하게 된 문학적 기반의 출발점이었다고 믿는다.

  인사동 초입 종로구청 건물 1층에 한국문인협회가 있었다. 대학로로 이사하기 전 협소한 문인협회 사무실 조감도가 눈에 선하다. 바로 옆 건물 지하 바로봉 다방은 문인들의 근거지였다. 미모의 마담이 있었고,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한 다방에는 하루 종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거나 약속 없이도 마주하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의 환담으로 화기가 넘쳤다. 하루는 원고 청탁을 받고 문협에 방문한 날이었다. 갑자기 발길질로 문을 박차고 들어선, 턱밑 앞자락이 흥건히 젖어 있는 남루한 차림의 한 분이 들어섰다. 천상병 선생님이었다.

  조경희 선생님(상임부이사장), 오학영 선생님(주간) 두 분이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나 오백 원만 줘!", 마치 맡겨놓은 빚 받아내기나 하는 듯 큰 소리로 천상병 선생님은 손을 내밀고 계셨다. 황급히 오학영 선생님이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자 "내가 오백 원 달랬지 천 원 달라고 했어?" 호통을 치시더니 결국 오백 원을 거슬러 주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신 선생님은 흘러내릴 듯한 바지를 추켜올리며 두말없이 문을 박차고 사라지셨다. 시대의 삼대 기인 중 한 분으로 불리던 천상병 선생님의 기인 행각을 직접 뵙는 일은 큰 충격이었다. 기막힌 선생님 삶의 역사를 단숨에 풀어 낼 수는 없지만 가슴 뜨거운 아픔만은 분명했다. 인사동 문협 시절의 실루엣이 어제인 듯 선하다.( p.31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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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9-5월호 <목동살롱 4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