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32회 동국문학상 수상작(수필)/심사평/수상소감>
내가 반한 명화
이명지/ 수필가
그림은 내면 깊숙이 있는 기억을 불러낸다. 기억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거나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아릿한 상처이기도 하고 한없이 외롭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같은 작품을 보고 있지만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이 예술의 묘미일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으로 맞춘 퍼즐처럼 자신의 삶이 반짝거리기를 욕망한다. 하지만 도달하지 않고서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 욕망이고 가장 채우기 힘든 것이 또한 그것 아닌가.
내가 본 첫 명화는 아버지를 따라갔던 이발소에서 본 밀레의 낡은 프린트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제목이 「만종」이었다는 것은 훨씬 이후에 알게 됐지만 빛바랜 이발소 그림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그곳에서 자른 머리가 몽실이 같아 찔끔거리며 흘겨본 속상한 기억일 뿐이다.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사춘기 여학생 시절에는 모나리자나 베토벤의 초상이 있는 책받침을 고르곤 했지만 그건 순전히 친구들에게 고상해 보이고 싶어서였을 뿐 명화를 이해해서가 아니었다. 서구의 그림들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동양화가인 미술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백발이 근사하신 미술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미술 시간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소질이 있다는 인정도 받았다. 그때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농부였던 부모님은 비싼 화구들을 사줄 형편이 되지 못해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그림은 내게 통증 같은 것이 되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세월에도 아물지 않는 아릿함이 되어 그림 앞에서는 애써 고개를 외로 꼬고 다녔다. 그런데 돌아보면 어느새 또 그 언저리에서 서성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결국 화가가 아니라 전시기획자가 되어 다른 방법으로 그림에 대한 한을 풀고는 있지만 아직도 어떤 작품 앞에 서면 아득히 서러움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어느 날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그림 한 점 앞에서 나는 눈을 뗴지 못했다. 꽃을 함빡 뒤집어쓰고 우수에 찬 눈빛을 한 말 한 마리가 내 묵은 상처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선한 눈빛이 욕망을 내려놓고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신선 같다고 할까. 문득 중국의 고사 하나가 떠올랐다.
그림을 좋아하는 중국의 어느 황제가 하루는 궁정 화가들을 모아놓고 꽃밭을 지나온 말을 그려오라 했다. 꽃밭에 들어 있는 말도 아니고 이미 지나온 말이라니……. 모든 화가들이 고심하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림을 받아든 황제가 크게 비뻐하며 무릎을 쳤다. 달려가는 한 필의 말 뒤로 수백 마리의 나비 떼가 따라가고 있는 그림이었다. 꽃밭을 지나왔으니 그 말에게선 향기가 났을 터이다.
저 작가는 중국고사를 알고 그렸을까? 마치 옛이야기 속의 화가를 연상시키는 이 작가는 누구일까? 그때부터 수소문하기 시작해 김석영이란 작가를 만나게 됐고 그의 작업실에서 다시 수많은 그의 분신들과 조우했다. 분신들은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처연힌 서 있거나 포효하며 맹렬히 차오르고 도약했다. 더러는 달빛을 달려 어딘가로 행해가고 있었고, 그 앞으로 희미하게 동이 터오기도 했다. 작가는 그를 '곡신谷神'이라 명명했다.
곡신, 작품의 주제가 곡신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는 전율이 일었다.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 골짜기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천지만물을 생산하는 신비로운 암컷, 이것은 골짜기의 신이며 이것이 도道 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도덕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매일 아침 『도덕경』의 한 구절씩을 묵상하며 운동을 겸한 108배 명상을 하고 있던 때였다. 심지어 스스로의 호를 현빈玄牝이라 지어놓고 도와 페미니즘의 관계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는데, 작가 김석영은 이미 그 골짜기를 향해 저만치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곡신이라 이름 붙인 말의 고삐를 잡고 성큼성큼 말이다. 수양 깊은 도반을 만나 수호신을 선물 받은 듯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작품세계에 또 한 번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작품 속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영혼이 들어있지 않으면 공산품에 불과할 것이다. 문학이 상처와 고통의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이듯이 그림 또한 아무리 화려한 채색을 했어도 그 이면에 슬픔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밝음은 어둠이 있어 가능하고 아름다움은 추함이 있어 존재하는 것처럼. 김석영의 작품에는 사유가 있었다. 그 사유는 때로 화관을 쓰기도 하고 나부가 되기도 하고, 절대의 고독 속에 처연히 홀로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반가사유상의 모습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아득한 슬픔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아니 내게만 그렇게 보였는지 모른다. 잊었다고 생각한 나의 꿈이 거기 서성대는 것을 만나버린 나는 울컥 콧잔등이 시렸다. 작가의 고뇌는 따뜻했다. 상처받은 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직이 위로를 전하는 듯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던 어린 왕자의 말처럼 고단한 인생길에서 만난 오아시스로 반짝거렸다.
작가는 중국의 황제의 고사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곡신들은 나의 추억과 상처에 돤여하며 꽃밭을 지나왔다. 그것은 더 이상 그림 앞에서 아프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위로였다. 때로는 포기가 더 큰 평화로움을 주니까.
내가 반한 걸작으로 세계적인 명화를 꼽았다면 좀 더 근사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짜릿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느끼는 바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예술은 나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갤러리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그림 잘 모르는데……."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술의 가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떤 감동을 줬느냐에 있듯, 좋고 싫음의 기호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취향은 누구도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다를 뿐. 반드시 비싼 그림만이 좋은 작품은 아니다. 나의 감성과 버무려지며 내 안의 무엇과 교류할 때 그 작품은 자기에게 최고의 걸작일 것이다. 내게 그것은 곡신이었다. 당신이 반한 명화는 무엇인가? ▩
-전문-
* 심사위원 : 신경림 문효치 박제천 유혜자 장영우(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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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 장영우>
이명지는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예대학원(문예창작)을 졸업하고, 1993년 『창작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뒤 『중년으로 살아내기』『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등 두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그는 다양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일상적 체험을 십매 내외의 문장 속에 갈무리하는 데 열정을 쏟아왔다. 수상작 「내가 반한 명화」는 어린 시절 처음 대했던 서양 회화에 대한 기억과 중학교 시절 미술 시간의 추억, 그리고 갤러리를 하면서 만난 화가와의 인연 등을 담백하게 풀어내어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치열한 삶을 우아하게 살고자 하는 허영"으로 간난신고를 견뎌온 그의 삶과 글이 더욱 알차게 영글어지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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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가난한 움막에 들여놓은 별 하나
제게는
아주 맛있는 도시락이 하나 있습니다.
마음이 헛헛하고
내가 아무것도 아닐까봐
자꾸 조바심이 날 때 꺼내먹는 도시락입니다.
뭔가를 이뤄냈거나, 칭찬 들을 일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소소한 축하의 말과,
등을 토닥여 준, 진심의 덕담들이 들어 있는 칭찬 폴더지요.
노트북의 바탕화면에 띄워놓고
야금야금 꺼내먹는 도시락.
제 어깨를 스스로 토닥이며 지내온 세월 동안
이 칭찬 도시락은
어떤 단백질보다 저를 기운 돋게 했고
어떤 탄수화물보다 마음의 살이 차오르게 했지요.
동국문학상 수상으로 제 칭찬 폴더에는
또 하나의 메뉴가 생성되었습니다.
가난한 움막에 별 하나를 들여놓은 듯 환합니다.
꽉 찹니다.
그 어떤 상보다 동경해 왔던 상이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 후배님들 옆에 서 있는 것으로도 행복한 제게
이런 과분한 칭찬이라니요!
이제 평생 배도, 가슴도 고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큰일입니다.
요즘 와 자꾸 입가에 웃음이 뻥싯거리고,
발걸음이 꺼떡댑니다.
이거 무슨 큰 병은 아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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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묵문학인회 vol.46『東國詩集』에서/ 2019. 5. 17. <문학아카데미> 펴냄
* 이명지/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1993년『창작수필』로 등단, 수필집 『중년으로 살아내기』『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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