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 에세이>
『계간 파란』 2019년 봄호 번역
요령부득의 세월에 대하여(발췌)
이현승
연구자로서 백석(1912-1996, 84세)이나 이용악(1914-1971, 57세)의 시를 대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곤경은 분단을 기점으로 이들 시인의 시가 가지는 변모 때문에 발생한다. 이들 시인의 시가 분단 이전의 한국 근대 시사의 한 마루를 이루는 뛰어난 성취를 가진다는 데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실제로 1988년의 해금 조치 이후 한국 문학 교육과 연구의 장에서 이들 시인들의 복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는가를 생각할 때 그 원인이 이들의 문학적 업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말 그대로 이들 시인들의 자리는 복권된 것인바 분단문학사의 18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불균형한 공백을 이들의 시와 문학이 메꾼 것이다. 그러나 해금 초기의 연구 상황과는 다르게 점덤 더 분단 이후의 이들의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들 작가에 대한 연구가 분단 이전으로 한정되는 것은 보다 의지적인 범위 설정의 결과가 되었다. 문학연구에서는 연구의 대상과 범위 설정의 자체가 이미 일정한 가치 평가를 포함할 수밖애 없는 것이기에 분단 이후의 작품들이 상당 부분 공개돤 지금까지도 이들 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분단 이전에 국한된 겨우가 훨씬 더 많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더 중요한 목적이고 이유인 셈이다.(P.2~3.)
가령, 백석과 이용악은 고향이 각각 평북 청주와 함북 경성으로 이들은 분단과 함께 자신들의 고향에 머문 것으로 알려져 통상 이들은 월북 작가라고 부르지 않고 재북 작가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보다 뜨겁게 자신들의 청춘을 서울에서 불살랐고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고향에 머문 것 역시 하나의 선택으로서 어떤 의도와 의미를 짐작케 한다. 혹여 그 진실을 파고들 수 없어서 '고향에 남음'처럼 중립적인 표현으로 처리하였다면 그 자리에 이미 분단의 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석과 이용악, 이들의 시는 이들의 삶과 무관하게 존재하거나 설명될 수 없다. 해방기의 이용악의 문단 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이용악의 부단한 좌표 이동의 실감할 수 있고, 백석의 방대한 번역물들을 통해 백석의 사상과 삶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아동문학 논쟁을 통해서 백석이 시나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완고한 철학이 무엇이었는가를 찾아볼 수 있다. 아동문학에 대한 글에서 백석은 아름다움과 단순성을 강조하고 도식주의를 배격했다.
오늘날 가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왜 굶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라고 말해 실소를 자아내듯 사실 100년 전의 문학도 100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단순히 분단 이후의 시에 대해서만 요령부득인 것이 아니다. 분단 이전의 작품들을 대할 때조차 지금의 관점이나 선입견이 반영될 수 있기에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애정이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된 사실들을 종합해야 할 때 우리의 길잡이는 일관성과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한 일관성을 위해서 사실이 희생되거나, 사실의 편린만을 따라다니다가 일관성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감성 체계 안에서는 백석이나 이용악 등이 재북 시기에 써 놓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분단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훌륭했으나 이후에는 시대와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반쯤 공감이 가지만 반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사실 자명해 보이는 것이 얼마나 자명하지 않은지를 깨닫는 과정이 모든 배움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모순되어 보이는 무엇인가가 자명해지는 순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이나 맹신이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막힐수록 더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다. (P.3~5.)// 계간 파란 편집 위원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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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2019-봄호 <권두 essay>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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