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초상화
정숙자
죽음은 생애를 새롭게 한다
돌아보게 하고 고쳐보게 하고
멈추어 바라보게 한다
그의 용모, 그의 말씨, 그의 사상 등
방치했던 구석까지를 뜯어보게 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의 실제는
그의 사후 세계에서가 아니라
그의 무덤 밖
타인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자死者가 물리적인 신체를 갖추고 으앙~ 재탄생한다는 건 증명 불가능한 가설에 불과하다. 물리학이나 수학/기하학을 동원한다 해도, 죽은 자의 부활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계산으로 풀어낼 수 있는 우주과학이론도 아니다.
덤이나 에누리를 잔뜩 얹어주어도
타인 안에서, 그가
흰 날개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를
굳이 따라가 보지 않아도, 그는
지옥도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런데도 그랬었구나
저 두 마디는 칭찬일 수도 욕일 수도 있다. ∴ 죽은 뒤에 또 죽는 자, 죽은 뒤에 더 죽는 자는 아주 깜깜하게 죽은 자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이, 죽은 자와 산 자 양자에게 준 선물 중 가장 맑고 따뜻한 우산 하나는 뒤늦은 이해와 그리움과 추억이다.
짧고, 긴 삶
짧고, 긴 죽음
죽은 자는 하나의 초상으로 고정된다
삶의 진행자인 우리 모두는 오늘, 바로 지금
불가역적/가변적 검푸른 눈동자와 눈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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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리문학』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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