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서대선 『히말라야를 넘는 밤 새들』 (발췌)/ 도요새 : 도종환

검지 정숙자 2018. 12. 28. 22:07

 

    도요새

 

     도종환

 

 

  낯선 세상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의 일생이다

  시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도전하고 비상하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일주일 낮밤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날 수 있어야 한다

  생의 갯가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우주를 움직이는 힘은 거대하나 보이지 않으며

  우리는 각자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빙하가 녹는 여름의 북쪽까지 갈 것이다

  연둣빛 물가에서 사랑을 하고

  새끼를 키울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어디에나

  덫과 맹금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이유가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고

  이전에도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번개의 칼끝이 푸른 섬광으로 하늘을 가르는

  두렵고 막막한 허공을 건너가지만

  우직하게 간다는 것

  날갯죽지 안쪽이 뜨겁다는 것

  갈망한다는 것

  우리가 도요새라는 것

  함께 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라는 것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도요새의 일생이라는 것이다

  저기 또 새로운 대륙이 몰려온다

   -전문, 『포엠포엠』2016. vol.70 여름호

 

 

   ▶ 정처定處를 찾아서(발췌)_ 서대선/ 시인

  "도요새의 "날갯짓" 위로 체 게바라(Ernesto Rafeal Guevara de la Serna, 1928-1967)가 오버랩 되었다. 체(Che Guevara)의 혁명정신이 신념으로 내면화 된 것으로 보이는 도 시인의 "도요새" 속에는 체 게바라의 정신을 밟아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 당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사로잡혀 총살당하기 전까지, 의사의 길을 걷는 대신 독재사회 속에서 '학습된 무기력'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고통을 치유하는 혁명가가 된 사람이다.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28-2016)를 만나 쿠바에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라틴아메리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꿈을 꾼 진정한 혁명가였다.

 

  '쿠바의 두뇌'라고 불리며 쿠바 혁명정부의 중요 직책에 올라 쿠바 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켜나가며 쿠바를 재건했던 체 게바라는 1965년 4월, '쿠바에서는 모든 일이 끝났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로 건너가 바리엔토스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에 참여한다.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던, 명예와 부가 보장된 정처定處를 과감하게 박차버리고 한 마리 "도요새"처럼 "도전하고 비상을 멈추지 않은" 체 게바라에게서 인간이 희구하는 "정처定處"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정한 혁명가는 침략과 수탈과 착취의 땅에서, 또는 독재자의 감시와 처벌에 대한 공포로 형성된 '학습된 무기력(leamed helpless-ness)'으로 삶의 정처定處를 잃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리적, 사회적, 정신적 정처定處를 마련해 주려는 '의미의 의지(will to meaning)'를 가져야 한다. 전 인류가 자신이 원하는 정처定處에서 안온한 삶을 누리게 되는 그날까지 "도전"의 "날갯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전언하는 도 시인의 "도요새"는 도 시인이 삶의 정처定處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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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선 평론집『히말라야를 넘는 밤 새들』(포엠포엠 Books 011) 에서/ 2019.1.10. <포엠포엠> 펴냄

  * 서대선/ 2013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2009), 『레이스 짜는 여자』(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