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2018-12월호 / 명작의 자리>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52세)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노출된 목재 골조에 백색 석회를 바른 흰 벽, 튜더식의 옛 멋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다. 그의 발자국을 기억하고 있을 보도의 닳아진 돌 블록과 바랜 나무 창살을 톺아 만나지는 오래된 숨결이 깊고, 그가 팔을 휘저으며 헤엄쳐 지나간 짙푸른 하늘과 대지의 기운이 투명하다.
작품 속의 시어가 되었을, 갖가지 꽃을 거느린 그의 생가다. 오래된 나무 대문, 천이 드리워진 침대와 응접실의 실금 간 돌바닥을 지나, 화려한 무늬의 벽걸이가 걸린 아늑한 방은 그가 태어난 곳이다. 부모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스며든 요람과 장난감, 아기 포대기는 어린 시절의 그와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하다. 3층의 다락방, 열린 창문으로 발랄한 햇살이 쏟아놓은 맑은 하늘 멀리 먹구름도 살짝 보인다. 그는 고적한 어느 날, 조밀한 자애의 기운을 식혀버린 소나기 틈새로, 반짝이는 손을 내미는 하늘의 전령을 만난 적이 있었을까. 찰나의 만남을 녹여 그토록 심오한 인간의 어둠을 비추어 그 유명한 4대 비극을 지어냈을까. 반들반들 닳아진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주방 옆 식품 보관실에 죽은 토끼와 꿩이 걸려 있다. 깃털에서 빛나는 오색찬란한 공허를 그도 조롱해 보았을까.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이토록 풍족했던 그는 가세가 기울자 학업을 중단하고, 정육점 또는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했다. 이때 법률서적을 탐독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고 법률의 부조리도 간파했을 것이다. 특히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법과 인성의 첨예한 갈등 속을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절묘한 반전과 사극이나 비극에 그려진 권력 투쟁의 세계를 유추해 볼 때 그의 경험과 소양과 많은 독서량이 짐작되니 말이다.
정원에서는 그의 작품이 공연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삶의 제약 속에 흐름이 막힌 강, 눈물! 그는 속울음을 나눌 줄 아는 휴머니스트였다. 인간성의 모든 문제와 삶의 본질적 과제를 공유하는 그는,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대문호다. 초원의 평화 속으로 잔잔한 빛을 뿌리며 지혜를 나르는 에이번 강. 고니 두 마리 깃털 다듬고, 그의 사리 같은 명언 한 줄 실은 배들…. "책을 읽는 사람 가운데 나쁜 사람은 없다." (김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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