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42
정숙자
나는 석기시대에서// 왔다. (남은) 음식 버릴 순 없다. 껍질까지도 세세히 손질한다. 먹는다. 맛은 상관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으면 고마웠다. 그 때!
(낡은) 옷도 버릴 순 없다. 기워 입고 헹궈 입는다. 멋은 좀 없어도 입을 수 있으면 족하다. 젊을 때는 나도 요즘 여기에 맞추려 애썼으나 이제 본향이 그리운 것인가. 그때의 입성에 비하면 해묵은 옷도 더없이 소중하다.
유리병, 페트 용기. 각종 생활 도구들, 종이와 볼펜… 함부로 대할 순 없지. 모양 색상 쓸모까지도. 그런데 그 꽃들을 일회용이라니! 진짜 꽃이라서 그런가!
그 숲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도, 입을 게 모자라도, 책이 없어도 서로서로 기대고 믿고 살았다. 그래야만 짐승을 잡고, 맹수의 공격도 물리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사람끼리만은 따뜻한 불 지피며 내내 행복했었다.
지금 여긴 IT시대, 모든 게 많다. 많다 못해 남아돈다. 사람만이 귀하다. 귀해졌다. 그 숲에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물건들. 일일이 뜯어보고 쓰다듬고 간직하지만, 나도 더러더러 버릴 수밖에 없다. 특히 사람의 경우, 견디다 못해, 겪다 못해 멀어지는 수가 있다.
석기시대에는 없었던. 몰랐던. 멋진 사람. 그런 사람들.
거기서 여길 어떻게 곧장 올 수 있었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둘러대련다.
석기시대와 지금의 시간을 반으로 딱 접으면 이곳에 발 닿지 않을까, 라고.
그리고 또 그렇게 접어 미래 공간으로 갈 것이기에 오늘의 사물들이 이리도 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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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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