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내 죄는 시간에게 물어라

검지 정숙자 2018. 11. 17. 02:08

 

    내 죄는 시간에게 물어라

 

    정숙자

 

 

  옛 벗을 서운케 한다

  즉자도 신중히 먹은 맘이다

 

  막막하거나 막 젖을 때

  버나드 쇼의 독설만이 위안으로 재생된다

  "본인이 없다는데 무슨 이의인가?"

  그 엄청난 의지만이!

 

  옛 벗은 내가 외출했다는 걸 모른다

  내 얼굴 안쪽에 길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얼굴이 여기 있다는 것 외에 무엇을 깰 수 있겠는가

  늘 집에서 한가로이 전화도 잘 받는데

 

  '그'가 어떤 파도를 해내고 있는지, '그'가 어느 사막에서 물먹고 있는지 계산할 수 없으므로 '그'의 무정과 무심에 쐐기를 박는다.

 

  보듬는다, 충분히!

 

  얼굴이 얼굴과 함께

  얼굴 너머의 먼 곳에 머물러야 하는 얼굴을 어찌 납득할 수 있을까 보냐

  '저렇게 한들한들 앉아 있으면서 무슨 시간이 없다고'

  옳다. 맞다. '그'가 시인이 아니라면

  시간이 아니라면

 

  하지만,

 

  "여백이 없다. 분초가 부족하다."는 머리/칼 끝에 

  옛 벗은 떠난다. 그게 내 감기가 아니라 본병이라는 진단을 잊는다

  아무리 곱하고 나누어도 '그'는 집안에만 있는데

  외출했다는 사실을

 

  이 까마득한 광인의 구름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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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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