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죄는 시간에게 물어라
정숙자
옛 벗을 서운케 한다
즉자도 신중히 먹은 맘이다
막막하거나 막 젖을 때
버나드 쇼의 독설만이 위안으로 재생된다
"본인이 없다는데 무슨 이의인가?"
그 엄청난 의지만이!
옛 벗은 내가 외출했다는 걸 모른다
내 얼굴 안쪽에 길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얼굴이 여기 있다는 것 외에 무엇을 깰 수 있겠는가
늘 집에서… 한가로이… 전화도 잘 받는데…
'그'가 어떤 파도를 해내고 있는지, '그'가 어느 사막에서 물먹고 있는지 계산할 수 없으므로… '그'의 무정과 무심에 쐐기를 박는다.
보듬는다, 충분히!
얼굴이 얼굴과 함께
얼굴 너머의 먼 곳에 머물러야 하는 얼굴을 어찌 납득할 수 있을까 보냐
'저렇게 한들한들 앉아 있으면서 무슨 시간이 없다고… 늘…'
옳다. 맞다. '그'가 시인이 아니라면
시간이 아니라면
하지만,
"여백이 없다. 분초가 부족하다."는 머리/칼… 끝에
옛 벗은 떠난다. 그게 내 감기가 아니라 본병이라는 진단을 잊는다
아무리 곱하고 나누어도 '그'는 집안에만 있는데
외출했다는 사실을
이 까마득한 광인의 구름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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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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