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태동_해외수필 읽기(해설)/ 티파사의 혼례 : 알베르 카뮈

검지 정숙자 2018. 11. 8. 02:06

 

 

  <해외수필 읽기 20 - 해설 / 티파사의 혼례 : 알베르 카뮈 >

 

    실존적 삶의 본질을 탐색한 고전적 산문

 

     이태동

 

 

  현대 프랑스 미문美文의 하나이자 고전적 산문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카뮈가 파리로 진출하기 전해인 1939년 에세이집 『혼례』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아름다운 기행산문의 배경은 카뮈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알제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티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티파사는 원래 페니키아 사람들의 정착촌이었는데 로마에 의해 정복되어 약 2000년 전 항구港口 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은 카뮈가 10대와 20대에 친구들과 버스로 여행을 가서 오래된 사원과 빌라들, 그리고 4세기에 지은 기독교 바실리카(끝 부분이 둥글고 내부에 기둥이 두 줄로 서 있는 큰 교회)들 사이에서 피크닉을 즐기곤 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산문은 티파사에서 보냈던 카뮈의 유년시절 풍경을 단순히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알몸으로 보고 느꼈던 원시적인 경험을 통해 태양과 가난으로 엮어져 있던 삶과 우주의 신비를 실존적 차원에서 의미 깊게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앙드레 모루아가 지적한 것처럼, 그에게 있어 알제리의 태양과 벨쿠르(알제리시의 빈민가)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 자신이 스스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을 염두에 두면, 이것은 부조리 현상에 대한 저항적 실존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빈곤과 태양 아래서 또한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이 선하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 "빈곤은 그에게 고통에 대한 경의를,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가르쳐 주었다. …… 태양은 그에게 많은 역할을 했다. 비와 안개와 얼어붙은 아침의 나라에서 자란 우리들은 따뜻한 바닷가에서 알몸으로 자란 어린애의 육체의 환희를 상상하기 힘들다. 고국을 떠난 알제리인들이 굳이 미디(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살려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인들은 놀라워했지만,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기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잊을 수 없고, 그것 없이 살 수 없다. 나는 궁핍 속에서  살았지만, 그와 동시에 일종의 환희 속에서 살았다."라고 카뮈는 말한다. 사실, 그는 "냉기와 태양으로 빛나는 그 창백한 겨울" 속에서 성장했다. 생애의 각 순간이 기적 같은 가치와 영원한 청춘의 모습을 스스로 지니고 잇었다.

  카뮈는 티파사에 봄이 와 태양에서 쏟아지는 열기가 환희에 넘친 생명력으로 티파사의 폐허를 꽃으로 뒤덮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되살려 놓고 있다. 그는 여기서 푸른 하늘 아래 바닷물에 몸을 적실 때 느끼는 관능적인 기쁨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행복과 기쁨이 현실이 아닌 초월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을 반항적으로 극복하는 실존적 움직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티파사의 혼례」의 주제는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진실로서 실존주의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아침 태양 아래 커다란 행복이 하늘 가운데서 흔들거린다.…… 나는 여기서 소위 영광이 무엇인지…… 그것은 무한히 사랑하는 권리를 뜻한다. 세상에 단 하나의 사랑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인의 몸을 껴안는 것, 그것은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신비한 기쁨을 가슴에 껴안는 일이다.…… 미풍은 서늘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마음껏 이 삶을 사랑하며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삶은 내게 인간조건에 대한 긍지를 준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뽐낼 필요는 없다. 만약 뽐낼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태양, 이 바다, 젊음으로 고동치는 이 가슴, 소금 냄새나는 이 육신, 애정과 영광이 황색과 청색으로 융합되는 무한대한 풍경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관능적으로 접촉하는 기쁨에 대한 카뮈의 찬가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앙드레 모루아는 이것을 두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비교된다."고 하면서도 한결 더 신선하고 건강하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유명한 걸작 『시시포스의 신화』의 탄생을 예고하는 삶의 환희와 생명의 축제로 가득 찬 밀도 짙은 찬연한 산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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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18-가을<해외수필 읽기 20>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명예교수,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