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겹눈/ 이성렬

검지 정숙자 2018. 9. 3. 16:13

 

 

    겹눈

 

    이성렬

 

 

  두 번째 시집 『비밀요원』을 펴낸 후, 몇 시인들이 나에게 '충고'한 것은, 너무 여러 스타일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비밀요원』에서 내가 보이고 싶었던 것은 세계에 대한 다소 차가운, 차분한 시선과 성찰이었는데, 이 부류의 작품들은 대개 모던하다. 『비밀요원』에는 그분들의 지적대로, 서정적인 작품들도 적지 않은데, 이 점이 좀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대개의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한 권의 시집은 당연히 한 가지 색깔, 한 가지 주제로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한 시인들은 대개 어느 한 스타일을 고집하고, 평론가들도 '……' 의 시인이라고  규정하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지리산의 시인' 또는 '다문화가정의 시인' 등등으로, 시인이 한 가지의 주제나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흔한 말로, '한 가지도 잘 못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멀티플레이어가 잘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다. 왜 화학 교수가 시를 쓰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끝없이 물어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누가 보든지, 이 작품은 아무개의 것이다, 라는 식으로 시인의 강렬한 개성이 드러나는 시를 써야 한다고 많은 분들이 충고하는데,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에는 장점과 단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대전대 김명원 선생이, 나의 세 번째 시집 『밀회』에 들어 있는 '인물시(「고물수집가 정공춘 씨」,「무명가수 허구만 씨」등)를 계속 써나갈 의도가 있는지 물어온 적이 있었다. 『밀회』에 수록된 열 편 가량의 인물시를 나는, '만인보'는 아니고 '십인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고는 하는데, 사실 나는 인물시를 '기획'하여 한 권의 시집으로 낼 의사도 능력도 없다. 그러자면 적어도 60명 가량의 인물들을 나의 삶에서 찾아내어야 할 터인데, 그들에 대한 시를 멋지게 써나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잡석'들이 다수 들어가게 될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비록 십인보라도, 시집 한 귀퉁이에서 나름대로의 개성과 향기를 발한다면 나는 만족한다. 흔히 독자들이 많은 시집들에 대하여, '3~5편만 읽을 만하고 나머지는 별 볼일 없다'는 평을 한다면, 그 이유 중의 상당 부분이 인위적으로 시집이 '기획'되었기 때문 아닐까? 물론, 시집 속의 모든 시들이 한 가지 색깔의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나름의 개성과 몸매로 빛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직, 김선우의 『도화 아래 잠들다』의 마지막 시를 읽고 나서, 시집과 헤어지는 것이 마치 연인과 이별하는 것과 같을 수 있구나, 깨달았다.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공부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 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잘라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뜻하게 녹아 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 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 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 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은 새의 부리에 손마디 하나쯤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김선우, 「입설단비立雪斷譬」(전문),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시인의 개성이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한 가지일 필요가 있을까? 어떤 화가가 시종일관, 일생 동안 웃는 얼굴만 그린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화가의 그림을 즉시 알아볼 것이다. 그 화가는 웃는 얼굴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들었으니.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 혹시, 그 화가가 오만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화가를 예로 들자니, 내가 존경하는 (지금은 작고하신) 김기창 화백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그분의 화집을 보면, 자신의 스타일을 일생 동안 몇 번씩이나 혁신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시기의 작품을 보아도 김기창의 강렬한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한 예로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일생 동안 열일곱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완전히 서로 다른, 독립적인 명작이었다. 이것이 예술가의 바람직한 상이 아닐까? 반복은 예술가에게 죽음과 같은 것 아닐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각 개인의 '개성'이 그렇게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가? 서정시를 쓰는 시인은 늘 서정적이고, 현대시를 쓰는 시인의 생각은 늘 모던한가?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중간쯤에 위치한다"는 말처럼, 인간의 내면은 매우 복잡하다. 사실, '나의 내부에는 몇 사람이 살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한 가지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아침에 몇 개의 가면들을 가방에 챙겨 넣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꾸어 쓰지 않는가? 섬찟한 사이코드라마 <씨빌Cybil>의 주인공처럼, 다중인격(multiple personality)이 오히려 정상인 것아닌가. 한 개인이 100% 이성적이거나, 전적으로 감성적일 수 있는가? 인간은 다양한 속성의 복합체라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여러 개의 얼굴로 새로운 시의 스타일을 실험한 네루다의 말대로, <Muchos Somos(We are many)>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서정시만을 쓰는 시인은 그의 본성이 서정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게으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것은 모더니즘만을 고집하는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한 스타일의 시만을 고집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정시든 민중시든 모더니즘시든, 어느 한쪽만을 편애하여, 다른 쪽 시들을 폄하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추상화에도 좋은 그림이 있고, 구상화에도 멋진 작품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시에서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꼭 서정시를 써야겠다, 또는 모더니즘시를 써야겠다, 그런 생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내가 서정시와 현대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일 듯하다. 또한, 시인으로서의 나의 신상은 분류 불가능할 것이므로, 나는 평론가들에 의하여 (……)의 시인이라고 언급되기를 꺼려할 것이며, 나의 시가 이런저런 유형으로 선반에 놓이는 것도 사양하고 싶다. 진실로 위대한 예술은 분류 불가능한 것 아닐까? 나의 시에 대해 "수만 개의 낱눈과 겹눈"이라고  말한 평론가(김명원 선생)가 계신데, 진실로 고마운 말씀이었다. 시인이 세상을 볼 때, 한 가지의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 단색의 필터로 가린 안경으로 보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광활하고 복잡하다. 극히 이질적인 것들로 가득한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다면적인 관점(multiple perspectives)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더빙」이라는 작품에서도 인용했지만,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일화는 무척 흥미롭다. 몇 가지의 필명으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발표한다면 얼마나 파격적이겠는가? 다층의 다면적인 세계를 보기 위해서 시인이 여러 색깔의 다초점 렌즈를 갖추는 것은 또한, 시인의 오만을 불식시키는 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단색조의 필터로 세상을 '규정'하려는 시인은 오만한 것 아닐까? 『밀회』이후에 시집을 낸다면 나는 풍향계를 완전히 돌려서, '모던'한 작품들로 가득 채울 듯하다.

 

 

  정전된 다락방에서 안경을 벗어 들었다.

 

  모니터는 동전 크기 빛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팽팽하게 감각이 살아나는 내 넓적다리에 밤은 차가운 발바닥

  을 대었다.

 

  접시 위에서 가오리가 붉은 아가미를 꿈틀거렸다.

 

  내 눈은 점점 부풀어 올라 물고기 눈과 같은 광각으로 어두운 숲

  을 훑었다.

 

  나무들의 그림자에는 상어 등뼈를 닮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사슴 한 마리가 성탄 카드 밖으로 걸어나왔다. 막막하게 눈내리

  는 벌판으로.

 

  지구에서 100광년 떨어진, 또 다른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 지글

  지글 끓는

  열기를 느꼈을 때,

 

  안개가 겨울 논바닥에 남은 볏단처럼 앙상한 주춧돌 위를 헤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눈동자는 감당하지 못한 채, 수만 개로 세포 분열하였다.

    -이성렬,「겹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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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겹눈』에서/ 2018. 8. 28. <천년의 시작> 펴냄

  * 이성렬/ 서울 출생, 2002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비밀요원』『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