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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철광magentite을 갖지 못한 종을 위하여
허연
과학자들은 세상과 현상에 도전했다. 그들은 어떤 시대이건 뭔가를 밝혀 냈고, 그들이 밝혀 낸 것이 정설로 확인된 경우 세상의 규칙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이 감당하기에 우주는 너무나 무한했고, 세상엔 너무나 많은 함수가 있었다. 그들은 분명 지적인 도전자들이었고, 팩트를 신봉한 지식인들이었지만 그들도 어떤 시詩적인 순간에 맞닥뜨리는 날들이 많았다.
과학자들이 감성에 물들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시는 그곳에 있었다.
아이작 뉴턴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상의 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팩트를 찾아낸 천재였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것은 어마어마한 우주 현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질량을 가진 두 물제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원리를 중력의 법칙으로 계산해 낸 그는 더 큰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의 방정식에 따르면 우주에 있는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은 서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난리가 났어야 했다. 하지만 뉴턴의 불안과는 달리 우주는 질서정연하게 그 자리에서 움직였다. 왜 그럴까. 뉴턴은 중력의 존재는 찾아냈지만 행성들이 왜 서로의 중력 때문에 부딪히거나 추락하거나 태양계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순간 뉴턴은 갑자기 문학적이 된다. 『프린키피아』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자.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6개의 행성은 공전 방향과 공전면이 거의 일치한다…. 이토록 질서정연한 움직임이 단지 법칙만으로 유지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태양과 행성, 혜성으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태양계가 지금과 같이 완벽한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보살핌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현계를 인정하고 '절대자 운운'하는 순간 그 자리에는 시가 있다.
뉴턴은 결국 이런 문학적인 문장을 남긴다.
"내가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네 생각에는 단지 해변에서 놀다가 이따금/ 남달리 더 매끌매끌한 조가비를 찾는/ 소년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시키는 대로,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려고 애쓴, 남들이 다 하는 말이 아닌 나만의 말을 하려고 애쓴 도전자들은 그들이 과학자이든 시인이든 결국 매끌매끌한 자갈이나 조가비를 찾는 소년들이었다.
나는 시인이 하는 일이 뭘까를 생각할 때 수많은 과학자들이 넋을 놓고 바라봤을 그 무한한 우주를 생각한다.
시를 쓰는 일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시를 쓰는 일은 이미 남들이 다 한 말을 다시 하거나, 다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을 반복하거나, 하나 마나한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글자로 된 퍼포먼스는 너무나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명명되어 있다. 구호가 있고, 표어가 있고, 안내판이 있고, 설명서가 있고, 판결문이 있다. 이 문서들은 대부분 명백하고 확실하다. 그러나 이 현실적인 문장들은 미지의 세계를 끝이 안 보이는 심연을, 도저히 문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이미지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언젠가부터 일반 상식을 써 놓고 이것을 시로 봐달라는 떼쓰기가 흔해지고 있다.
그들은 일반 상식을 넘어선 시를 놓고 난해하다고 삶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한다.
이해하기 힘든 시각이다. 물론 난해함에 숨어서 자신의 낮은 기량을 숨기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번외에 놓으면 될 일이지, 무엇인가에 도전해서 이미지를 얻어낸 도전자(?)들의 고유한 노력까지 폄하하는 건 문제다. 도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감感을 가진 자들 역시 난해함 뒤에 숨은 자들처럼 문학적으로 번외에 놓아야 한다.
그리스 시인에게는 진실과 정의였던 문장이 국경을 살짝 넘어 철천지원수인 터키 시인에게로 가면 거짓과 불의가 된다. 이런 테두리가 분명한, 테두리 안에서만 통하는 격문을 쓰는 것이 시는 아닌 것이다.
천체물리학자 닐 다그래스 타이슨은 『블랙홀 옆에서』라는 책에서 이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만일 인간의 머릿속에 자철광이 들어 있어서 항상 북쪽을 인지할 수 있다면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철광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현대과학은 우주 물질의 대부분을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 시에서 이미지는 어떤 방향성을 가진 에너지다. 아직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방향성을 찾는 일. 시가 할 일은 그 정도의 일인 것 같다.
시인들이여 이제 '일반 상식'은 그만 쓰자. 인간이라는 이 어리석은 종에게 아직 미지의 세계는 끝도 없이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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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18-가을호. 첫 페이지에서
* 허연/ 1991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오십미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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