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아돌하』를 내면서>
감동이란 무엇인가
임승빈/ 본지 주간
많은 사람들이 문학이나 예술의 목적이 감동에 있다고 말한다. 감동을 받기 위해 작품을 감상하고, 그 감동 여하를 가지고 문학이나 예술의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감동이 곧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 기준인가.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더 정교한 사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감동의 크기가 곧 예술적 가치의 크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미국의 신비평주의자들이 말하는 '감동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를 빌어 설명한 바 있다. 즉,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단순히 내용에 의한 감동의 크기가 아니라, 내용까지를 포함한 그 구조의 적합성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문학이나 예술에는 감동이 있어야만 한다. 감동이 없는 예술은 그 '어떻게'도 진정한 예술일 수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감동의 진정한 요체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감동을 공감을 통한 감동으로 오인하고 있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에 쉽게 공감하는 것을 감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맞아. 맞는 말이야. 어쩌면 이렇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쩌면 이렇게 나와 같은 느낌일 수 있지?'라고 하면서 감탄하는 것을 감동의 요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창조이다. 기존에 없는 생각, 없는 느낌의 새로운 제시이다. 때문에 그 창조의 결과는 평범한 시각으로는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관습과 전통,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고와 자동화된 시각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다.
진정 창조적인 작품은 단지 놀라움의 대상일 뿐이다. '뭐야 이게. 이걸 작품이라고 내놓은 거야? 도대체 뭘 말하겠다는 거야?'라는 의문만을 던질 뿐이다.
에릭 사티가 작곡한 4분 30초짜리 「침묵」이라는 교향곡이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다. 아니, 지휘자는 지휘를 위해 손을 든 채, 연주자들은 연주를 위한 준비 자세로 4분 30초 동안 마냥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지휘자가 손을 내리고 돌아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연주가 끝난다.
'아니, 도대체 뭐야? 이게 연주야? 연주를 했단 말야? 이게 음악이야?'라면서 관객들은 웅성거린다.
그러나 이게 바로 음악이다. 관객들은 생전 처음으로 연주하지 않는 음악을 들은 것이다. 그 어떤 음악도 아니면서, 이 세상 그 어떤 음악보다 진정한 음악일 수 있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연주하지 않는 음악을 통해 에릭 사티는 간혹 들리는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갑작스러운 기침소리,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 등을 음악의 영역으로, 아니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피아니스트였던 시절, 무대 위에서 도끼로 피아노를 깨부숨으로써 음악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은 감동이다. 그러나 그 감동은 공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비유Metaphor는 그 취의Tennor와 매재Vehicle의 상시성Intersetion이 적을수록 훌륭한 비유인 것처럼, 창조란 공감의 영역이 적을수록 훌륭한 창조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가 주목적인 문학이나 예술의 감동은 공감의 영역이 지극히 적은, 놀라움에 의한 그것이어야 한다. 큰 놀라움과, 그 놀라움만큼 다시 큰 인식에의 변화,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획득에 의한 감동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나 예술이 추구하는 진정한 감동의 요체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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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아돌하』 2018-여름호 <『딩아돌하』를 내면서』>전문
* 임승빈/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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