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채상우_『계간 파란』 2018년 봄-여름호 권두 에세이(발췌)

검지 정숙자 2018. 9. 3. 23:02

 

<권두 에세이>

 

   『계간 파란 2018. 봄-여름호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발췌)

 

     채상우

 

 

  벌써 아홉 번째 『계간 파란』을 낸다.(p.p. 2. 3.)

 

  창간호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계간 파란』을 잡지가 아니라 '단행본' 곧 '한 권의 책'처럼 만들고 싶었다. (……) 우리는 『계간 파란』이 시인과 평론가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이길 꿈꿨다. (p.p. 3. 3.)

 

  그래서 우리는 맨 먼저 한국 시사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결과가 『계간 파란』1호 '사건들'이었다. (……) 2호에서 기획한 '시론' (……) 3호 '들뢰즈', 4호 '분노', 5호 '기원', 6호 '리듬', 7호 '주체', 그리고 8호 '사건들 2' 모두 한국시와 관련한 이론적 또는 미학적 응전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재적 · 현실적 문제에 대한 긴박한 요청에 대한 화답이 기획의 까닭 한편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쓰기가 비롯되고 사유가 진전되고 그것이 일시 종결되거나 멈추었다가 다시 개진되는 불연속적인 지점들과 그에 대한 비판적 질문들의 과정이길 우리는 기대했다. (p.p. 4. 5.)

 

  우리가 『계간 파란』9호의 이슈로 '시'를 선정한 이유도 이 근방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 5.)

 

  시는 늘 미완이며 영원한 미래다. 저 밤하늘의 성좌들이 헤아릴 수 없는 시공간을 건너 이제야 지금  여기에 다다른 소멸한 별 무리의 잔흔이라면 시는 정확히 그 반대다. 시는 미래의 흔적으로서 자신을 창조하고 폐기한다. 그래서 시는 현재를 '고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통함'은 얼마나 위대한가. 니체는 다음과 같이 묻고 대답했다. "무엇이 영웅적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것." 나는 이 에피그램을 이렇게 다시 적는다. '고통'과 '희망'은 서로를 맞바라보고 있는 짝패가 아니라, '고통'은 더 깊은 '고통'에 의해 갱신되고 '희망'은 또 다른 '희망'에 의해 개진되는 동시적 사태라고 말이다. 시는 단순하게도 '고통'을 부정함으로써 '희망'을 창안하거나 '희망'을 몰수함으로써 '고통'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함께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는 자기 안의 '미래의 흔적'들까지 소지燒紙한다. 그래서 시는 불멸에 이른다. 덧붙이자면 시인들께 신작 두 편과 더불어 기발표작 두 편을 함께 부탁했는데, 기발표작들의 키워드로 '삶, 죽음, 사랑'을 제시했다. 언뜻 보자면 '삶, 죽음, 사랑'은 소재적 측면에서 모든 시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키워드들은 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 한국시에서 수시로 개입하는 '죽음'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징후임에 분명하다. 이제 한국시에서 '죽음'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삶'을 긍정하지 않는다. 또한 '삶'과 별개의 것으로 신화화되지도 않는다. 시인들은 이미 '삶'과 '죽음'을 동시에 끌어안고 '최고의 사랑'을 가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p. 6~7.) // 계간 파란 발행인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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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2018년 봄-여름호 <권두 essay>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