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향가의 향기에 취하여, 함께 배우는 즐거움
윤정구
한글 창제 이전인 한자 전용 시대의 시가인 향가는 이두吏頭와 향찰鄕札로 기록 되었으므로, 그 해독이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경성제국대학에 와 있던 언어학자 오쿠라 신페이小創進平의 책자를 우연히 보았던 26세의 영문학 교수 양주동의 「향가 연구의 회억回億」(『思潮』권2호, 1950)을 싣는다.
나로 하여금 국문학 고전 연구에 발심發心을 지어준 것은 오쿠라 신페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란 저서이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부쳐온 『경성제국대학기요記要』 제1권이란 부제가 붙은 그 책을 빌어, 처음은 호기심으로, 차차 경이와 감탄의 눈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그것을 통독하고 나서, 나는 참으로 글자 그대로 경탄하였고, 한편으로 비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첫째 우리 문학의 가장 오랜 유산, 더구나 우리 문화 내지 사상의 현존 최고 원류가 되는 이 귀중한 향가의 석독釋讀을 근 천년 이래 아무도 우리의 손으로 시험하지 못하고 외인外人의 손을 빌었다는 그 민족적 부끄러움과, 둘째 나는 이 사실을 통하여 한 민족이 다만 총칼에 의해서만 망하는 것이 아님을 문득 느끼는 동시에,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을 통절히 깨달아, 내가 혁명가가 못되어 총칼을 들고 저들에게 대들지는 못하나마,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재文才에는 약간의 천분이 있고, 맘 속 깊이 원願도, 열烈도 있는 터이니, 그것을 무기로 하여 빼앗긴 문화유산을 학문적으로나마 결사적으로 전취戰取, 탈환해야 하겠다는 내 딴엔 사뭇 비장한 발원과 결의를 하였다. … 신라 가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 반년 남짓 지나 오쿠라 신페이의 해독을 반박하는 첫 논문 「향가의 해독, 원왕생가에 취就하여」를 탈고, 일본학자 학술지 『청구학총』靑丘學叢에 발표하고, 이후 5년 만에 『조선 고가 연구』朝鮮古歌硏究 초고를 완성하였다.
만여 장의 원고를 싸들고, 이 서점, 저 서점으로 간행을 애걸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서점 아닌 주점에 들어가, 대취大醉하여 대성통곡 중에 사학자 Y씨를 만나 한바탕 허희歔
한편 오쿠라 신페이 씨도 만만치 않았다. 「사학」史學지 제44호에 그는 '노마駑馬가 늙었지마는, 뜻은 쇠하지 않았다.10년 뒤에 다시 양 씨와 대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필생의 재대결을 다짐하는 글을 실었다. 조선의 방언 연구에도 성과를 냈던 진지한 그는 외국어를 연구하여 대항해야 하는 불리한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44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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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향가 제1집 『노래 중의 노래』 2018. 5. 31. <연기사> 펴냄
* 윤정구/ 경기 평택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햇빛의 길을 보았니』『쥐똥나무가 좋아졌다』외,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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