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 읽기 19/ 이태동: '해외수필 읽기'이지만 이번 여름호에는 우리나라 고려 중기의 문신이며 문인(1168-1241)인 이규보李奎報 의 글을 소개해 본다. 이규보의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 지헌止軒 ·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벼슬은 정당문학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 이규보는 경전經典과 사기史記와 선교禪敎를 두루 섭렵하였고, 호탕 활달한 시풍은 당대를 풍미하였으며 명 문장가였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 등이 있다.
매미를 날려 보내며[방선부放蟬賦]
이규보
매섭고 표독한 저 거미여, 앙큼도 하여라. 누가 너더러 기교機巧(거미는 기교로서 물物을 해친다는 왕수일王守一의 말-역주)가 있다 하더냐. 그물만 들어있는 저 창자 속을…….
숲을 의지해서 쳐진 그 그물, 그물에 매미 한 마리 걸려 있다. 걸려서 처량해진 매미의 울음이여!
나는 그 소리를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물에서 풀어내 멀리로 날려 보낸다. 곁에서 누구 한 사람 듣는 이 없어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너희들은 다 같은 곤충으로서 거미가 매미보다 잘생겼다 할 수 없고, 또한 매미가 거미보다 더 못생겼다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날아가는 저 매미는 살게 되었다. 그러나 거미는 주리게 되었구나. 매미를 생각해서는 덕德이 있는 일이라 하겠지만, 거미에게는 커다란 원망을 샀다. 누가 나더러 슬기 있는 일을 했다고 하겠느냐?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추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말없이 얼마 동안 묵묵히 앉았다가 이제 그 의심을 풀어 본다.
거미는 탐욕스런 심성心性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매미의 기질은 퍽 맑다. 무엇보다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다른 곤충과 다르다. 이슬을 마셔 창자를 채운다. 이처럼 청결한 매미를 그 탐욕 많은 거미가 욕을 보이는 것을 나는 보고 싶지 않다.
명주실과 같이 가늘고 약한 거미줄, 이루離婁(고대古代에 눈이 맑았던 사람. 맹자도 이루의 명목明目을 말한 적이 있다. 역주) 의 눈으로도 보기 어려운 그 줄, 많은 벌레들은 약지 못해 그 그물에 걸린다. 한 번 걸리기만 하면 벗어나지 못한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말려든다. 냄새나 맡고 덤벼드는 파리나, 꽃향기를 탐내어 날아드는 나비들이야 거미줄에 열 번 걸려도 측은할 것 없지만, 아무것도 탐하지 않는, 맑고 고고하기만 하여 보통 곤충과는 다른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야 되겠는가.
그래, 매미를 풀어 멀리 날려 보낸 것이다. 부디 가시덤불 같은 데 있지 말고 저기 높고 무성한 밀림으로 날아가거라. 거기서 더욱 맑고 향기로운 이슬을 마시며 살아라. 그러면 거미줄에 걸릴 염려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조심은 필요하다. 거기서는 거미가 아니라 버마재비 같은 벌레들이 있다. 늘 너를 노릴 것이다. (여기서 장자莊子가 말한 '득실得失의 상반相反을 볼 수가 있다. 장자가 어느 날 이능離陵으로 사냥을 나갔다. 이상하게 생긴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 새는 장자가 활 들고 자기를 겨냥하고 있는 줄을 모른다. 새는 더 가까이 와서 앉는다. 자세히 보니 그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마귀도 바로 위에서 덮치려 하는 새를 보지 못하고 녹음 속의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 그 숲은 밤나무 밭이었다. 그 밤나무 밭주인은 장자더러 밤을 따 먹었다고 욕을 했다. 여기서 장자는 새나 사마귀나 매미나 그리고 자신이 모두 진성眞性을 상실했다고 했다. 이 글의 골자는 진성을 찾자는 데 있는 것 같다.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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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18-여름호 <해외수필 읽기 19>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명예교수,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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