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태동_해외수필 읽기/ 때묻은 거울 : 이규보

검지 정숙자 2018. 7. 22. 17:42

 

 

<해외수필 읽기 19/ 이태동: '해외수필 읽기'이지만 이번 여름호에는 우리나라 고려 중기의 문신이며 문인(1168-1241)인 이규보李奎報 의 글을 소개해 본다. 이규보의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 지헌止軒 ·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벼슬은 정당문학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 이규보는 경전經典과 사기史記와 선교禪敎를 두루 섭렵하였고, 호탕 활달한 시풍은 당대를 풍미하였으며 명 문장가였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 등이 있다.

 

 

    때 묻은 거울[경설鏡說]

 

    이규보

 

 

  어떤 거사居士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린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쳐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밝고 맑은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밝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만일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고는 반드시 거울을 깨뜨려서 부숴 버리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깨뜨려 버릴 바에야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옛날 거울은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갈고 닦아야 맑아진다-역주)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어찌 이상하게 생각하는가?"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

  *『문예바다』 2018-여름<해외수필 읽기 19>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명예교수,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