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시인 박제천/ 문효치

검지 정숙자 2018. 6. 7. 02:15

 

<인물 단상>

 

    시인 박제천

 

     문효치

 

 

  명진관 그 석조건물이 생각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그때 이 석조건물에서 강의를 들었고 같은 무렵 그 학교에 다니던 국문과 학생들은 이 건물 안이나 그 앞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햇볕을 쪼이면서 누군가의 시를 이야기하곤 했다. 가끔은 남의 험담 같은 것도 했지만 어느 선배가 정지용의 시집을 구했다는데 한번 구경하러 가자라든가 누가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게 되고 누가 신춘문예에 도전한다는 둥 그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자라고 있었다.

  박제천은 그 무렵의 내 친구다. 조금은 오만한 듯했고 시 욕심이 많아 보였다. 주로 시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3학년 때 벌써 현대문학지에 신인으로 추천을 받기 시작했다. 이 일은 벤치에 모여 앉은 참새들의 화제거리였다.

  박제천은 시에 관한 한 앞서가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누구의 시도 탐탁하게 보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그를 나도 별 관심 없어 했다. 그리고 졸업하고 군대에 가고 각자의 삶에 바빴다.

  정작 그와 가까워진 것은 세월이 꽤 흐른 후였다. 박제천 홍신선 정의홍 선원빈 신용선 홍희표 하덕조 등과 <세월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월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더욱 친숙해졌다. 뒤에 합류한 이길원 김학철 이상문 이원규 유재엽 등과 우리는 가끔 만나면서 술자리도 하고 때론 여행도 하면서 한동안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기는 거의 후반기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 기운이 남아 있던 때였기에 각자 열심히 살면서 전성기에 버금가는 작품 활동도 치열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이 무렵 그가 발행하는 『문학과창작』의 일에도 봉사하면서 기행문을 연재하기도 했다. 춘천 공주 포천 등 <숲속의 시인학교> 행사에도 여러 번 동행을 하여 많은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요즈음엔 내가 문협 일을 맡아 너무 바쁘게 사는 데다가 세월회 모임마저 흐지부지되고 보니 박 시인을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일전에 동국문학인회 일로 잠깐 볼 수 있었는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건강이 좀 좋지 않은 듯해서 안타까웠다. 우리 문학을 위해서 그 재능과 열정이 아직도 필요한 일이거늘 아무쪼록 건강과 활기를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현모양처인 김정희 여사를 여의고서도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문예지 만들기'를 쉬지 않고 하면서 그 많은 단행본 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 고생이 얼마난 클까. 그러나 문학을 위해 헌신하면서 공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념을 금치 못한다.

  친구야, 그대나 나나 우리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그대의 미수米壽나 백수白壽 때에 또 이런 글을 쓰게 해 주시라. 비교적 말을 아끼는 과묵형인데 가끔 활짝 웃을 때는 주위가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다. 그 웃음 피어나는 얼굴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한 가지 흉을 보자면, 지독한 골초라는 것이다. 낮에 줄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밤에 자다가도 잠시 일어나 담배를 피우고는 다시 눕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이 세상의 담배를 모조리 태워서 없애려는 듯 담배와 대결을 하는 것인지, 건강을 위해 담배 박멸운동은 이제 대한민국 정부에게나 맡기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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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나무2018-여름호 <큰 특집 시인 박제천>에서

  * 문효치文孝治_아호:갈산葛山 /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 《서울신문》《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진단시학』창립 동인, 시집 『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백제 가는 길』등, 시선집 『백제시집』, 저서『시가 있는 길』『기행시첩』등,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