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허만하_이승훈 시의 실존 조명과 노에시스적 성격(발췌)/ 서울에 오는 눈 : 이승훈

검지 정숙자 2018. 6. 16. 02:01

 

<권두시론> 中

 

    서울에 오는 눈

 

     이승훈(1942-2018, 76세)

 

 

  서울에 오는 눈이 춘천에도 오고

  춘천에 오는 눈 속에 누가 있나

  춘천에 오는 눈 속엔 춘천이 있고

  서울에 오는 눈이 진주에도 오고

  부산에도 오고 수원에도  오네 오

  늘 하루종일 내리는 눈발 속에 하

  루가 내리고 오늘 오는 눈은 이제

  오던 눈 이 눈 속에 눈 속에 나는

  없네 눈은 내리고 눈발 속에 내가

  사라지네 눈발이 나를 덮네 간절

  함도 애절함도 눈발에 파묻히는

  불빛일 뿐 / -전문-

 

 

   ▣ 이승훈 시의 실존 명과 노에시스적 성격(발췌)_ 허만하

  그의 시가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전반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자아와 자아의 심층을 이루는 무의식과 시 쓰기의 관계는 이렇게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문을 가진 채, 그가 말하는 전반부의 의도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나는 이승훈의 시가 사물(존재자 · 즉자 pour-soi)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움직임( 생성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시라 파악하고 이를 노에시스의 시라 명명한다. 그것은 노에마에 이르지 않은 살아 있는 상황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흐름flux의 단면이 아닌, 흐름 자체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당연히 시인 박찬일이 정확하게 지적한 대로 "완성도를 결별한 시"-"유기체적 글쓰기의 반대"(시집 『화두』의 표4)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적 문체는 시사적으로 이승훈이 자각적으로 처음 시도한 성과라 생각된다. 과녁이 없이 날기 위하여 날고 있는 화살의 시를 그는 썼다. 그가 시도한 독자적인 문체의 근거가 바로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결과라는 사실을 나는 주목한다. 시와 철학의 관계가 빚어낸 시작품을 목도하는 설렘을 나는 느끼는 것이다. 현재에 대해서는 벌써 변화 안에서밖에 현실은 없다. 그것은 곧 움직임을 미적인 것으로 내세우는 베르그송적 예술방식에 부합하는 것이다. 한편 시는 한 의식이다. 분할할 수 없는 흐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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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18-여름호 <권두시론>에서

  * 허만하/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해조』『시의 계절은 겨울이다』『허만하 시선집』등, 시론집 『시의 근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