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미리 쓰는 유언장
정명숙(故 조흔파 선생 배우자)
내 사후 일체를 딸 조수연에게 상속한다.
유해는 화장하되 1980년 사망한 남편 조흔파가 1974년 작성한 유언장에 화장해 흔적을 남기지 말라 했는데 유족으로 차마 그리 할 수 없어 모란공원에 유택을 마련해 2010년이면 30년이 된다.
조각가 김영중의 작품으로 아담한 고택이 되어 일 년에 한두 번 가며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3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점점 퇴락해가고 있는 걸 보며 언젠가 내가 가거든 백자 항아리에 잠든 흔파를 꺼내 해방시켜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영원한 자유인인 그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유언집행인인 내 주장으로 모란공원 유택에 가두었으니 이제 그이 유언대로.
유해는 화장하고 봉분이나 사찰 안치하지 말고 날리거나 흘려버릴 것.
1974년 11월 25일
유언장 작성자 조봉순
필명 조흔파
落葉歸士나 落葉歸根이든 우주공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게 해야 할 것 같다.
29년 전 유언집행인이 되어 당황했던 미망인 정명숙이 다시 유언장을 쓰게 되어, 모란공원 백자항아리에서 꺼내 묘 앞 소나무에 내가 죽거든 함께 수목장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자유인인 흔파가 원했던 길이었다.
2009년 7월
유언자 정명숙鄭明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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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280호 <散文>에서/ 2018. 2. 28. 발행
* 정명숙/ 故 조흔파 선생의 배우자,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 470, (……)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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