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성선경_조사(弔詞)/ 입춘이 지났는데, 봄이 오는데

검지 정숙자 2018. 4. 19. 03:01

 

<조사>

 

 

    입춘立春이 지났는데, 봄이 오는데

    - 故 박서영 시인 추모 특집

 

     성선경(시인)

 

 

  이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어떻게 이런 글을 써야 하나? 나는 지금 의문에 들었습니다. 후배의 조사를 써야만 하는 지금 마음은 무겁고 머릿속은 아무 생각 없이 하얗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자꾸만 회의에 빠지고 맙니다.

  내가 박서영 시인을 만난 것은 1996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후배 시인인 성윤석 시인을 통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성윤석 시인과 나는 몇몇 젊은 시인과 <문.청>이라는 시동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날부터 박서영 시인은 우리 <문.청> 동인에 합류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니까 199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직후라고 생각됩니다.

  첫 인상이 매우 단아해보였고 빈틈을 보여주지 않으려 웅크려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후 박서영 시인은 <문.청> 동인의 편집 일을 도맡아 하였고 우리들은 박서영 시인의 의견에 무조건 따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들은 20여 년 동안 10권의 동인지를 묶으며 늘 함께하였습니다. 모든 길이 시를 향해 있었고 모든 일이 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모든 것이 시였던 날들이었습니다. 

  박서영 시인은 시에 대해 매우 엄격했으며 자신의 삶을 시에 맞추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에도 매우 엄격했습니다. 나는 자주 박서영 시인에게 시집을 좀 자주 묶으면 좋겠다고 조언助言을 했고 박서영 시인은 늘 시집 묶는 일에도 너무 엄격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젊은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늘 젊은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젊은 열정은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이 이번에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야겠습니다. 마 대충 살고 퍼떡 늙자. 객쩍은 소리도 좀 하고 이제 너도 한물갔구나. 눈총도 좀 받자. 우리 그렇게 늙어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 박서영 시집 『좋은 구름』,  실천문학사, 2014.

 

 

  저수지에 빠진 를 업고 가고 있는 박 시인이 보인다. 한없이 가벼운 몸이 한없이 젖어 무거워진 시를 업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 모습, 안타까워 보인다. 아! 어쩌나. 한 빼어난 시인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지역 시단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책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책을 해야 할까요? 후배였지만 본받을 점이 많은 시인이었는데.

  지난 1월, 오랜만에 <문.청> 동인 몇 명이 보여 내 시집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일어갈 때』 출간 기념으로 모여 밥을 먹었습니다. 내 새로 나온 시집을 나눠주는 날이었습니다. 그것이 박서영 시인을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날 박서영 시인은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즐겁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성윤석 시인도, 송창우 시인도 나도 참 행복해 하였습니다. 아! 그것이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모르고.

  추억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머릿속은 하얗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할 말들이 아직 많고,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두드려줘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은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빈 자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시도 병마病魔도 다 내려놓고 영면에 들기를 기도합니다. 후배인 당신이 나에 대해 써야 할 이 글을 선배인 내가 후배인 너에게 이 글을 쓴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너무 힘이 든다. 혹여 저 세상에서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미안해해야 한다는 걸 일러주고 싶다.

  오직 시인이었던 박서영. 늘 시인이었던 박서영, 잘 가라. 네가 없는 저 봄을 나는 이제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 입춘立春이 지났는데, 봄이 오는데, 제비꽃이 필 텐데, 봄이 오고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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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18-3월호 <故 박서영 시인 추모 특집 / 조사>에서

  * 성선경/ 1988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갈 때』『널 뛰는 직녀에게』등 다수, 시선집 『돌아갈 수 없는 숲』, 시작 에세이『뿔 달린 낙타를 타고』,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 동요집 『똥뫼산에 사는 여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