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입김/ 박서영

검지 정숙자 2018. 4. 17. 21:42

 

 

    입김

 

    박서영(1968-2018, 50세)

 

 

  하얗게 귀가 얼어서

  기다림은 늘 기다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르고

  나는 기다림 곁에서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봄이어서

  목련은 하얀 총구를 겨누지만

  내게는 그것도 따스한 화구火口여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살고 싶었다

  문득

  아, 귀는 먼 곳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구나

  녹아내린 귀는 녹아버려서 울음이 되었다

  꽃 피는 소리로 위로를 받았다가

  꽃숭어리 떨어지는 고통이 귓가에 맺힌다

  불타는 귀를 잘라

  죄책감을 넣어둔 상자의 손잡이로 만들어야지

  열기에 휩싸인 마음은 귀로 열고 귀로 닫아야 해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울음은 사랑을 분해해 버리니까

  자꾸 울어서 모두 떠나는 거니까

  여자야, 홀수와 짝수처럼

  눈물을 셀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렴,

  목련나무 곁 돌멩이 밑에

  달팽이와 지렁이와 뱀이 살고 있다

  그들은 소리죽여 우는 걸 알아

  돌 위에 떨어져 있는 목련꽃숭어리 셋

  핏줄이 다 튀어나온 돌멩이의 붉은 귀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나비 한 마리

  입김이 만든 무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잘게 조각난 선물들이 쏟아지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산산조각이

  기억이라는 걸 알아

    -전문-

 

 

  * 박서영 시인이 2월 3일 오후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50세. 시인은 1968년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와 『좋은 구름』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과 요산기금,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행주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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