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최동호_말향고래는 전설이며 혁명이고 시이다(발췌)/ 내가 처음 만난 말향고래 : 이건청

검지 정숙자 2017. 9. 26. 01:32

 

 

 <2017년 제2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시집 : 이건청『곡마단 뒷마당에 한 마리 말이 있었네』

 

 

     내가 처음 만난 말향고래

 

    이건청

 

 

  나는 그게 말향고래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중학교 3학

년 때였다. 달이 휘영청 밝았었다. 그날 밤 돌연 귀가 이상

하였다. 들리지 않았다. 환청처럼 울렸다. 잠자리에 누워 있

을 수가 없었다. 맥박이 쿵쿵 울렸다. 안절부절이었다. 도리

없이 흰 종이쪽에 연필로 끄적여 속에 숨은 아이를 불러본

것이었는데, 그 밤에 나는 무려 다섯 개의 낙서를 던져놓고 

도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다. 죄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었다. 새벽 녘엔 창가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역 숲에서 새벽별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밤에 내게 왔던 말향고래는 그냥 맹탕인 사내

아이를 넘겨보다가 가버린 것인데, 그날 내게 오셔서 어깨

를 다독여주고 간 그분이 말향고래인 줄 까맣게 몰랐었다. 

    -전문-

 

 

   ▶ 말향고래는 전설이며 혁명이고 시이다(발췌) _ 최동호/ 시인, 문학평론가

   환청으로 나타난 말향고래는 객관적 대상이나 타자로서의 말향고래가 아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적어보는 소년은 그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의식의 덩어리가 뛰쳐나와 환청처럼 자신을 부르고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다 어깨를 다독여주고 가버린 것이다. 처음 습작을 시도한 소년이 경험한 황홀경의 체험이기도 하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새벽별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순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 개의 낙서 조각을 던져놓고 이렇게 두근거리는 맥박을 경함한다는 것은 이건청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아이가 그를 시인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고도 할 것이다. 처음 만난 말향고래 그것은 자의식의 덩어리이며 살아 있음의 징표이다. 그 아이가 그의 자의식 속에 숨어 있는 한 그는 다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향고래를 떠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유심』, 2009, 5~6호, 재수록)/(『2017. 김달진문학상 수상시집』P.P. 184.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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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김달진문학관 편『2017년 제2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시집 2017. 9. 5.<서정시학>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