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이육사(1904-1944, 40세)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전문. 1940년 1월
▶ 거울을 통해 거울 바깥을 보다(발췌)_ 장석주
"강철로 된 무지개"가 절망의 절정을 제시하는 것인가, 혹은 희망과 동경의 암시인가? 사실 이것을 판단하기는 매우 애매하다. 「절정」전체를 통해 시의 화자는 시종 소극과 피동의 자세를 유지한다. 저를 짓누르는 상황의 비정함에 맞서는 행동은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눈 감고 "무지개"를 상상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데, 이런 태도는 현실에 대한 초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육사의 또 다른 시 「아편」(1938.11.)에서 무지개가 "황홀한 삶의 광영"과 연관되는 표현이 나온다. "서릿발 칼날 진" 북방 고원이라는 척박한 처지에서 눈 감고 상상한 게 "무지개"다. 누구나 이런 절망에 빠진 처지에서 더 절망적인 상황을 상상할 리는 없다. 그 앞에 붙은 "강철"은 이 "서릿발 칼날 진" 세상이 뒤엎어져 "무지개"의 세상이 도래하기를 꿈꾸는 상상이 물거품같이 사라지지 않고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화자의 강렬한 무의식의 갈망을 반영한다.
※ 본문_ 각주6 :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필명이다. 어릴 때 이름은 원록(源祿)이다. 1943년 가을, 동대문 형사대와 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어 20여 일 뒤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일본총영사관 지하 감옥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 둥창후통 28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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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18-봄호 <특집|시와 인문학>에서
*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시, 같은 해 《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입선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등, 평론집 『시적 순간』『불과 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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