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유성호_떠나감의 말, 고요의 리듬/ 숲속의 집 : 박서영

검지 정숙자 2018. 3. 20. 23:44

 

 

    숲속의 집

 

    박서영(1968-2018, 50세)

 

 

  집에 돌아와 죽은 듯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혀로 달을 만질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달은 신선하고 촉촉했으며 자꾸 커졌다. 사랑의 협약 따위에서 알게 된 건, 시간이든 마음이든 커지면 아프게 된다는 것이다. 달이 점점 커지자 밥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졌다. 내 혀는 달의 뒷면을 핥아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닿을 듯, 닿지 못했다. 뒷면은 뱃속의 태아처럼 만져지진 않는다. 영원히 꺼내지 않고 둔다면 평화는 지속될까.

 

  시간이든 마음이든 멍이든 달이든 태아든 커지면 밖을 그리워한다. 찢고 나오고. 산산조각 나서 슬픔을 장악하고. 평화를 뚫고 나온 것들은 다 그랬다. 그날 물을 찢고 나온 소리들이 숲속의 산막 한 채를 공중부양한 채 밤새 울었다. 이것이 내 혀가 달을 만질 수 있게 된 단서이다. 나는 꿈을 꾸면서 어딘가를 다녀왔다. 나는 너와 함께 최대한 멀리 가 보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서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었다.

     - 전문,『시로여는세상2017-겨울호   

 

 

  떠나감의 말, 고요의 리듬(발췌)_ 유성호

  물론 유고로 많은 작품들이 나타나겠지만, 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 읽을 수 있는 박서영의 마지막 발표작일 듯하다. 시의 내용이 그다지 쉽지는 않지만, 그녀의 마지막 언어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이미 육신 깊은 데 질고를 안고 살아갔지만, 그녀는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자신만의 강한 언어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 시편에서 '숲속의 집'으로의 귀환을 상상한다. 집에 돌아와 죽은 듯 잠을 잤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혀로 달을 만지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게 된 상상. 물론 이 상상은 혀로 감촉할 때 달이 커지는 것처럼 "시간이든 마음이든 커지면 아프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설정된 것이다. 이를 일러 시인은 "사랑의 협약 따위에서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 협약으로 인해 밥을 삼키는 일도 힘들어졌고, 혀는 달의 뒷면에 끝내 닿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든 '마음'이든 '달'이든 '태아'든 커지면서 밖을 그리워하는 존재자들은, 모두 안을 찢고 나오고, 산산조각 나서 슬픔을 장악하고, 평화를 뚫고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물을 찢고  나온 소리들이 숲속의 집을 들어올린 채 울고 있을 때, 시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정 먼 곳으로 가서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사랑의 협약'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박서영은 그만큼 '사랑'의 시인이었고, 마지막 작품에서도 사랑을 가능케 했던 심장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환청처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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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8-3월호 <월평_시에서

  * 유성호/ 1999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펑론 부문 당선, 저서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