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유성호_고별사/ 사랑과 낭만의 '시'를 향한 열정과 직관과 논리(발췌)

검지 정숙자 2018. 3. 27. 22:33

 

<고별사>

 

    사랑과 낭만의 '시'를 향한 열정과 직관과 논리(발췌)

    -마광수 선생을 생각하며

 

    유성호

 

 

  작년(2017) 9월 5일 마광수 선생이 별세(1951-2017, 66세)하였다. 선생은 저 80년대 후반에 '야한 여자' 신드롬을 만들어내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이래, 영화 제작, 그림 전시회 개최, 『즐거운 사라』필화사건, 해직과 복직, 그리고 타계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는 투명하고 일관성을 띤 삶을, 한편으로는 파란만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삶을 살았다. 선생은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은사이기도 하다. 선생의 영결식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드렸다.

 

 

  오늘, 선생님의 영결식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영결식 혹은 발인이라는 순간으로 뵈올 줄 정말 몰랐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드릴 말씀이 없고, 또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저 이제 그곳에 가셔서는 외롭지 마시고, 힘들지 마시고, 자유롭게 글 쓰시고, 그림 그리시고 사시길 바라는 마음만 또렷할 뿐, 선생님께 달리 드릴 말씀이 빈곤하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많은 인생 굴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보다 까마득하게 젊으셨던 시절,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으로  오셨고, 연세대학교 인문관 2층 연구실은 우리의 상담소요 휴식처요 세미나 룸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선생님의 그 탄탄한 논문들이 생성된 곳이요, 그 한 많은 여인 '사라'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선생님을 많이 사랑했고, 많이 안타까워했고, 때로는 짐짓 멀리했고, 선생님의 말년을 그리도 고독하게 그냥 두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 생전에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기억들을 만들지 못하고 이렇게 빈소에서 선생님의 멀지 않았던 친구요 제자요 선후배임을 뚜렷이 자각하고 있는 것을 저희는 다시 한 번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기억의 용량과 밀도가 다르겠지만, 여기 모인 모두에게 선생님은 작지 않은 빛이자 빚으로 남아계실 것입니다. 순수함과 열정, 예술가로서의 자유로움으로 남으실 것이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쳐서 가장 술술 읽히는 글에 도달하려고 했던 장인정신으로도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명강사이셨고, 유머와 페이소스를 섞어 정말 명언들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던 학생들도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자유로움 그리고  해박한 섭렵과 표현에는 고개를 숙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희는 선생님을 외롭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것들이 무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원망을 거두시고 그 시간을 훌쩍 넘으시길 저희는 바라고 있습니다. 선생님. 물론 그 가운데 저희의 게으름과 무심함도 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 두고두고 선생님꼐 죄송할 따름입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에 감사하면서도, 왜 이렇게 죄송함이 밀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희는 다만 선생님의 소중한 부분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또 우리도 그 기억을 보태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무얼 가르쳐주신 스승이 아니고, 그저 수평적으로 동행해주신 스승이시니까요.

  저는 선생님의 생애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두 가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탐미적 관능을 포함한 사랑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자유로움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빌리면 "자유와 다원多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일 터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늘 '가면을 벗은 솔직성'을 강조하셨고 또 그렇게 일이관지 살아오신 셈입니다. 이러한 자유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상상적으로 그것을 실천해오셨습니다. 이런 시도 쓰셨지요?

 

 

  강가에서 혼자 서 있는 나

 

  말없이 흐르는 강물

 

  서녘에 노을은 지고

 

  점점 어두워가는 강 건너 숲

 

  내 곁엔 외로운 미루나무 한 그루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

 

  어느새 내 눈에 흐르는 눈물

   -마광수,「님 가신 후」전문  

 

 

  "강가에서 혼자 서 있는" 시인은 말없이 흐르는 강물과 지는 노을 그리고 어두워가는 숲과 외로운 미루나무 한 그루에 들러싸여 있습니다. 그때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은 어느새 "내 눈에 흐르는 눈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존재의 상실감과 그로 인한 무겁지 않은 감상感傷은 선생님의 문학적 발원지이자 궁극의 귀의처였습니다. 그 상실감으로 이제 저희가 '님 가신 후'를 슬프도록 노래합니다. 그 노래가, 굴곡 많았던 선생님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 커다란 위로와 회복의 언어가 되어 오래 남아주기를, 정말이지, 바랍니다.

  이제 정말 선생님이 떠나시나 봅니다. 선생님 편히 가시고, 아프지 마시고, 우리의 이 왜소한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셔서, 마광수라는 이름을 알고 지냈던 시간에 커다란 위안을 주시고, 선생님도 부족한 저희를 품으시고 크나큰 위안을 받으세요.

  선생님, 우리 선생님.

 

 

  지금 읽어보니 영결식이라는 현장성에 기댄 탓에 감상적인 면이 없지 않다. 워낙 예감하기 어려웠던 선생의 떠나가심에 급하게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아직 활자화된 일이 없어서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그곳에서의 평안하심을 다시 한 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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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2018-봄호 <연재|크리티카 - 포에티카>에서

  * 유성호/ 1999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평론집 『침묵의 파문』『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