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1912-1996, 84세)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
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
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전문-
▶ 물 몇 통桶을 길어다 준 일이 있는가?(발췌)_ 우대식
이 시는 만주 지방의 외롭고 쓸쓸한 삶이 반영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삶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인은 초라한 자신의 방에 누워 벽을 쳐다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때 글자가 지나간다. 지금 자신이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이미 태어날 때 결정된 것이다. 잠시 후 또 다른 글자가 지나간다. 하늘은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 그리고 릴케 모두 번잡함을 떠나 가난하고 외롭게 글을 쓰다가 사라진 인물들이다. 백석은 자신에게 부과된 연속되는 시련을 시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 등은 모두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이다. 백석의 관심은 늘 작고 여린 것들이었다. 이 순수한 마음이 결국 백석을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채 끝없이 유랑과 방황을 거듭하게 만들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백석은 상처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상처로 스스로 진입한다. 일상적 관점에서 그의 삶은 파괴당한다. 그의 시는 어떠한가? 그의 시는 상처라고 하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은 것인가 아닌가?/ 다시 돌아가 보면 시가 상처의 벽을 뛰어넘는 방식은 현실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답이 나온다. 단, 늘 그렇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어떤 변혁의 시기에는 시가 가장 앞장서서 현실의 변혁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들이다. 오히려 대개의 경우 시는 패배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장 먼저 자신을 그리고 더딘 과정으로 집단과 사회를 위로하고 치유한다. 좋은 시의 경우가 그렇다. 김수영의 시 「풀」은 시인의 의도나 독자의 해석여부를 떠나 시의 본질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예가 된다. 시가 어떻게 패배하고 다시 세계에 대응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는지 잘 보여준다. 고흐의 그림처럼 당대의 시인은 자신의 영향력을 거의 감지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김종삼이나 박용래, 천상병도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시인들이 현실적 상처나 불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분명한 것은 시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백석이 시를 쓰지 않았다면, 시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만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실존의 아슬아슬한 지경에 자신을 매달아 놓아야만 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분들이다. 이 한 줄에 무한한 영혼을 담았지만 어쩌면 자신들은 그런 줄도 몰핬던 시인들이다. 시적 자존에 자신의 생애를 걸고 자신의 상처를 노래했던 시들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적시고 위로한다. 시 장르의 변화 양상에 대해 많은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탓에 그 발화 방식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의 위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외과 집도의로 문인을 비유하자면 서사는 병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칼을 든다. 그러나 시는 상처에 대한 자기 판단이 서면 바로 칼을 대는 형국이다. 감각이 뛰어나고 예민한 촉수의 시인은 단번에 상처의 본질로 진입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상처의 주변만 무수히 칼질을 하고 봉합해 버린다. 얼마나 많은 시들이 상처 주위를 긋다가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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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MUNPA』 2018-봄호 <기획특집|상처의 벽을 문학은 어떻게 뛰어넘는가>에서
* 우대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설산 국경』등,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죽에 죽고 시에 살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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