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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강 이승훈 시인 영결사/ 최동호

검지 정숙자 2018. 3. 19. 21:19

 

<故 이승훈 시인 추모 특집 1 / 영결사>

 

 

    故 이강 이승훈 시인 영결사

   

    최동호

 

 

  이강 이승훈 선생님! 아니 시인 이승훈 선생님!

 

  이 어찌된 일입니까. 지난 17일 새벽 선생님의 부음을 전해 들으니 한국모더니즘 시의 한 기둥이 무너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래전부터 지병을 갖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풍문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잘 견디고 계신다고 듣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과 결별하시니 지난 50여 년의 세월을 선생님을 시단의 선배로 모시고 시를 배우고 시의 길을 탐구한 저희들로서는 너무 허망하고 황망하기만 합니다.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한 이승훈 선생님은 약관의 나이인 1962년 박목월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모더니즘시의 선구적 업적을 이루면서 이상으로부터 김춘수로 이어지는 문학사적 맥락을 가진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시인이셨습니다. 선생님은 1969년에 간행한 첫 시집 『사물 A』로부터 시작하여 2014년의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물네 권의 시집을 간행하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1987년 『이상 시 연구』를 간행한 이후 모더니즘, 해체주의 등의 서구의 첨단적 시론들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이 방면을 대표하는 시론가로서의 위치도 굳게 하셨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시론』(1991), 『모더니즘시론』(1995), 『해체시론』(1998) 등은 그러한 이론적 계보를 밝혀주는 중요한 저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님의 현대시론 탐구가 모더니즘시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불교의 『금강경』을 접한 이후 보여준 문학적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우리 시사에 동서를 회통하는 일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과 하이데거』(2011)와 『선과 아방가르드』(2014) 등은 서구 실존주의와 아방가르드에 불교의 선사상을 접맥시킨 독창적 저술이었으며 이는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시인이자 시론가로서 선생님을 우뚝 서게 했습니다. 이는 "한국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문학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평소의 지론을 그대로 실천한 단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시단에서 공부하는 시인, 새로운 시와 시론에 개방적인 시인으로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젊은 세대의 문학을 선도하고 그들을 옹호하기도 했던 선생님의 공로는 아무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선생께서 화두처럼 던진 "시의 본질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다"는 말씀은 앞으로도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의 시인들에게 숙명처럼 넘어서야 할 영원한 명제가 될 것입니다.

 

  지병이 심화되신 이후 문단 출입을 거의 하시지 않은 까닭에 최근의 근황을 잘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돌연히 날아온 선생님의 부음은 비통한 소식임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선생님을 따르고 흠모하던 수많은 제자와 후배들의 슬픔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단이 선생님의 시와 시론을 배우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가시는 걸음을 급히 재촉하셨으니 저희들은 커다란 상실과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옷깃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면 지상에서 지병과 함께 사는 육체적 고통을 다 떨쳐버리시고 이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무차별의 세상에서 탈속의 기쁨을 누리시게 될 것이라 상상하면서 저희들은 오늘 거행되는 영결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강 이승훈 선생님!

 

  한편으로는 까칠하고 까다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정하고 다감했던 선생님의 성함을 경외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호명해 봅니다.

 

  한국현대시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신 선생님은 이상과 김춘수가 개척한 모더니즘시의 후계자이자 동서를 회통한 시인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삼가 머리 숙여 선생님의 명복을 비오니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2018년 1월 19일

  한국시인협회장 최동호 절하고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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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18-2월호 <故 이승훈 시인 추모 특집1 / 영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