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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광의/ 오양호

검지 정숙자 2018. 2. 28. 21:45

 

 

    시인 도광의

 

    오양호 / 평론가

 

 

  '시인'이라는 말은 아주 겸손하다. 그냥 '시를 짓는 사람'이다. '밥을 짓는 어머니'라는 좋은 뜻을 가진 식모라는 말은 없어지고, 운전수가 기사가 되고, 간호원이 간호사로 이름이 바뀌는데 '시인'은 만날 시인이다.

  왜 그럴까. 시인 도광의 때문이다.

  시인 도광의는 힘이 염소처럼 세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지키는 힘이다. 우리 나라에는 시인이 많다. 아마 세계에서 제일 많을지 모른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단연 일등이다. 나는 도광의 만은 이름 앞에 '시인'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며 시인을 기린다. 도광의를 보면 '아, 저런 사람이 시인이구나. 시인의 언행은 저렇구나!'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이런 말 하면 다른 시인에게 몰매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위에서 시인이라며 유세를 떠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속기를 벗어나지 못한 장삼이사 같은 인사가 많다. 도광의 시에 이런 대문이 있다.

 

  까치야, 어치야, 청설모야

  철없이 장난치지 말고, 우슬하고 놀아라 우슬하고 놀면 이승과 저승 사이 홀아비가 사는 집 한 채 주겠다고 약속하마.

 

  산보를 나갈 때 함께 따라나서는 애견을 위해 비슬산의 산까치, 어치, 청설모에게 부탁하는 말이다. 천상병이 당나귀는 늙어도 어린이 같다는 그 당나귀를 닮은 말이다. 시인 도광의는 실재로 우슬이를 위해 이승과 저승 사이 집 한 채 지어 주었다. 우슬이 죽자 함께 다니던 산보 길에 50만 원 주고 묘터를 사서 무덤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속물의 눈에는 철딱서니 없는 늙은이다. 아니 어디가 좀 빈 사람 같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밥 굶지 않고 사니 타고난 복이 천혜라 그런 것 같다.

  시인 도광의는 고향 하양을 떠나지 못한다. 친구 구활 때문이다.

  구활은 "햇살 감기는 고삿길 있기에/ 국밥 말아먹는 하양 장날 있기에/ 꼬리 긴 노랑 할미새 있기에, 가슴 붉은 딱새/ 한 지붕 밑에 살고 있기에// 금호강 사과밭 떠나지 못했"고, 도광의는 챙 넓은 모자 쓴 그런 의리의 사나이, 서부활극 주인공 같은 키 큰 구활이 있기에 키 재고, 의리 재며 한 백 년 함께 살려고 하양 사과밭을 지킨다.

  시인 도광의는 '시는 존재의 한순간을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나타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모든 시에는 인간애와 장소애가 설날 떡국 생김 냄새나듯 풍긴다. 「박훈산 초상」「우체국장 이무길」에 보이는 사람 냄새, 그의 시에 나타나는 반야월, 모량역, 동강리……. 같은 이름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이나, 그가 술이 오르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라며 뿜어내는 은근한 소리 저 끝에 매달린 고향 들녘의 땅 냄새가 난다. 새금파리로 땅 긋고 까치발로 뛰놀던 가슴에 묻어둔 그 아련한 유년의 뜰, 고향 땅 냄새다.

  시인 도광의는 대구에서만 산다. 대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도광의는 대구에 시인이 대여섯이던 시절에 시단에 나와 아직 '시인'으로만 산다. 약관의 도광의가 처음 부른 「갑골길」은 노총각 가슴에 멍울진 사랑을 가장 한국적인 모티프로 빚어 그걸 이국풍 백양나무 가지에 척 걸어, 읽는 사람 가슴을 멍멍하게 만든 그리움이다.

  대구에는 시인이 많다. 그러나 도광의 만큼 시력이 긴 시인은 없다. 한때 그 땅은 문학공화국이었다. 6.25때 피란 온 문인, 통영서 올라온 청마와 大餘(김춘수), 청도 갑부 오누이 시인 호우와 영도, 『죽순』지 발행인 이윤수 등의 대구 시단을 달구었다. 지금은 『시와반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류시원, 박미란, 여정 등 젊은 시인들이 시의 키를 잰다.

  도광의는 대가 선배 문인들 밑에서 시업을 닦고 1960년대부터 대구 시단을 지키며 산다. 그에게 대구에 어떤 시인이 살았고 어떤 시를 썼는지 물어보라. 상화에서 이태수까지, 아니 그런 시인만 아니라 '가보세'에서 술 마시며 살다간 이름 없는 시인들의 이름이며, 남긴 작품을 종가 장손 할배 이력 꿰듯 들려줄 것이다. 이래서 도광의는 대구 시의 장손이다. 그의 몸에는 은화식물 같은 대구 대가 시인들의 포자가 난다. 그들의 낭만, 인정, 멋이 풍긴다.

  도광의는 사람을 가린다. 싫은 사람은 끝까지 싫다. 그러나 그는 외롭지 않다. 갈 봄 여름 없이 안지랭이 오르내리며 진달래, 오리목, 청설모, 청람 빛 하늘 벗삼아 하루가 바쁘게 살고, 그가 키운 제자가 달마다 철마다 문안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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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나무』2018-봄호 <대특집 서정과 낭만의 시인 도광의도광의 주제 인물 단상>에서

  * 오양호/『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 『낭만적 영혼의 귀환』등,『鄭芝溶詩選』(一譯, 東京, 花神社)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