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정병근

검지 정숙자 2011. 5. 12. 08:01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정병근



  보험 광고를 보고 있으면

  멀쩡하게 살아있는 몸이 미안하다

  사는 게 더럽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다

  요행스럽게 다치기, 행복한 암 걸리기, 그럴 줄 알고 죽기

  가 과연 말이나 되는 말이란 말인가

  보험을 들지 않으면 당신은 반드시 불행하리라

  가면 그만이다 싶다가도 꼭 천만 원을 남겨 주고 가야 하나

  대체 편안한 노후는 어떤 노후인가

  아버지, 물려주지 마시고 제발 그냥 가세요

  얘야, 오십이 넘으면 누가 먼저 갈지 모른단다

  그러니 너도 어서 빨리 당겨 살고 당겨 죽자구나

  나를 그만 예언하세요 듣자듣자 하니까

  던적스러운 죽음이 파리 떼처럼 잉잉거린다

  쫓아내고 쫓아내도 따라온다

  가족의 마음으로 예와 정성을 다해

  마지막 가시는 길 끝까지 정중하게 모시는

  월 25,000원 장의 업체 광고를 보고 있으면

  납골묘 분양 광고를 보고 있으면

  몸이 미안하다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사람의 목숨을 참 질기고 치사해서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지 그런 생각을 다 할라치면!

  머지않아 사람을 죽여주는 업체도 생길 것이 뻔하다

  빚에 시달리신다구요? 별 때문에 고통스러우십니까?

  살기 힘드시다면 다음 생을 기약하십시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의 숨통을 끊어 드립니다

  열심히 산 당신 고통 없이 편안하게 보내 드립니다

  임종에 납골까지 원스톱 서비스-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가면 그만이다 싶을 때 언제든지 죽여주는

  합법적인 세상이 오지 말란 법도 없지

  동무들아, 날 잡아라 우리 함께 죽으러 가자

  여보, 다음 달에는 꼭 죽어줄 게

  빨리 그렇게라도 되든지 해야지 이거 원,

  몸이 미안하다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유심』2011.5-6월호 <유심 시단>에서

  * 정병근/ 경북 경주 출생, 1988년『불교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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