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2018-3월호 / 명작의 자리>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서주영
김광섭(金珖燮, 1905-1977)은 함북 경성 출생으로, 시집 『동경』(1938),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김광섭시선집』(1974) 등이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이름이 높지만, 해방 뒤에 몰아친 좌 · 우익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익 문학 단체를 앞장서 이끌고, 문인으로서는 드물게 관직에도 한동안 머문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1951년 관직을 떠난 뒤에도 국제펜한국본부 중앙위원과 한국자유문학자협회 회장을 역임한다. 1956년에 창간해 꾸려가던 『자유문학』이 1964년 경영난으로 휴간에 들어가는 등 어려움이 닥치면서 고혈압 증세를 보이다가 이듬해 4월에 뇌출혈로 쓰러진다.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정든 성북동 집을 팔고 미아동으로 이사한다. 예순 살의 나이에 죽음과 고투를 벌이지만 한결 고적해진 생활 속에서 객관적 현실을 정면으로 투시하며 이를 오롯이 자신의 문학 속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1969년, 그는 이렇게 성북동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네 번째 시집 『성북동 비둘기』를 탄생시킨다.
성북동의 심우장 입구에서 좁다란 골목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북정마을이 나온다. 이곳엔 자그마한 비둘기 공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공원 벽 동판에는 북정마을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새겨져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그가 성북동에 5년여 사는 동안 쓴 시로 『월간문학』에 발표했다는 데서 월간문학 기획편집위원인 나로선 자부심을 느낀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서울 성곽까지 올라 내려다보니 오래된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흔히들 부자마을로 알고 있는 성북동이 있는가 하면, 성문 너머로는 마치 시간도 속도를 늦추는 듯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북정 마을이 있다.
'비둘기'라는 제재를 통해 산업화와 도시화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시 「성북동 비둘기」에서 '비둘기'가 상징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점 소외되어 가는 대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가 이 시집에서 내놓은 시들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이면엔,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드러낸 비인간화에 대한 준엄한 비판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김광섭은 서정주나 이육사, 유치환처럼 1930년대에 문단에 데뷔하지만, 그 당시엔 그들만큼 시인으로서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친일적 문인들이 적지 않았던 그 시기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창씨개명을 반대하다가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즉 그는 현실을 도피하거나 관념적 삶에 머물지 않고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시인이다."(한상훈, 「문학공간에 나타난 '비둘기' 이미지」) 양지와 음지가 분명한 성북동에도 내리는 눈만큼은 공평했다. ▩ (서주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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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참조>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1905-1977, 72세)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金珖燮』, 韓國現代詩文學大系 12/1981.11.14. 知識産業社(초판발행)/ 發行者 : 金京熙/ 값 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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